리처드 파인만이라는 미국 물리학자가 있다.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물리학자로 손꼽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활발한 대중 강연과 저술활동으로 일반인에게도 매우 잘 알려진 스타였다. 그에 대한 책은 과학 문화가 척박한 우리나라에서조차도 매우 이례적으로 수십 종이 번역되어 꾸준히 팔리고 있다.

특히 죽기 몇 년 전인 1985년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친구에게 한 얘기를 책으로 펴낸 회고록은 그가 얼마나 자유롭고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정직하고 진지한 삶을 살았는지 잘 보여준다.

회고록에 파인만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서 새를 가리키며 아버지는 어린 파인만에게 이렇게 말한다.“저 새의 이름은 Spencer’s warbler야. 하지만 이탈리아어로는 Chutto Lapittida, 포르투갈어로는 Bom da Pieda, 중국어로는 Chung-long-tah, 일본어로는 Katano Tekeda라고 한단다. (물론 이 이름들은 은 모두 새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지어낸 것들이다.)

너는 이제 전 세계의 모든 언어로 저 새의 이름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너는 저 새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단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저 새를 뭐라고 부르는지만 아는 거지.

자, 이제 저 새가 무엇을 하는지 관찰해보자.
새가 깃털을 자꾸만 쪼아대는 것이 보이니? 왜 그럴까?”

아버지는 파인만의 생각을 검토하고 교정하며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바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어린 파인만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작동 원리들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매혹적인 일인지 느끼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단편적인 지식들을 맹목적으로 외우는 것과 참다운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자원이 부족한 좁은 땅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환경과 굴곡이 많았던 역사는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서 이웃을 경쟁에서 제압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할 때도 있다. 오죽하면 굴지의 대기업 광고에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아무 부끄러움 없이 등장하겠는가.

이렇게 온 사회가 경쟁에만 내몰리다 보니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경쟁만을 하는 경우도 많다.
10년 앞을 내다보기 보다는 당장의 작은 경쟁에서 이겨야 내일이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경쟁을 시켜 줄 세우기를 하고 숫자 하나로 낙인을 찍어야만 일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특히 심각한 분야가 교육이다.
학생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행학습을 하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특목고, 자사고에 목을 맨다.

초등학생들마저 일제고사 줄 세우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어른들 때문에 방학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만큼 창의성도 빼앗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학은 거대한 공식집 외우기로, 과학은 실험 결과 외우기로 전락한다. 학생들은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영어 공부를 한다. 학교는 내용이 충실한 강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영어강의를 개설한다.

어린 파인만이 이 광경을 본다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게 무작정 경쟁만 해서 무슨 발전이 있겠느냐고. 그렇게 내용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새의 이름들만 외워서 언제 새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고.

이젠 사소한 작은 경쟁들에 목매달지 않아도 굶어죽진 않을 만큼 발전했다. 적어도 10년 앞을 내다보며 진짜 실력을 쌓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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