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8일(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3월 한 달간 ‘금녀의 벽을 뚫은 여성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최초 여성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 손해보험업계 첫 여성 CFO(최고재무관리자) 등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만나 그들의 인생을 들여봤다.

국회의사당 본청 718호 안. 급한 업무를 막 끝낸 김현주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법학·81년졸)이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취재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와주셔서 오히려 제가 영광”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어투에서 국회 의사당의 큰 건물이 주는 중압감을 이길 만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국회의장 ‘제1호 여성’ 수석비서관인 그를 3일(수)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작년 10월 김형오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 임명된 김 수석비서관은 정책수석비서관을 고민하는 직책이라 표현했다.

“입법기관의 대표로서 국회운영을 책임지는 의장을 어떻게 보좌할 것인지에 언제나 고민하죠.”

그는 “바람직한 국회 운영 방향을 찾고, 더 나아가 국회의원들이 입법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수석비서관은 국회의장 첫 여성 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기자생활을 통해 얻은 폭넓은 경험을 꼽는다.

“김형오 국회의장께서 여성 인력 활용과 여성 정책에도 관심이 많으세요. 그렇기에 여성분야, 문화에 대한 폭넓은 경험,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으셨죠.”

김 수석비서관은 1982년부터 MBC에서 25년간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 등의 다양한 부서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그는 특히 문화부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김 수석비서관은 문화부 기자 시절 유명 문인, 영화계 인사, 문화 현장 취재를 많이 해  문화 관련 경험이 풍부했다. 문화부 취재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베이징에서 열린‘세계여성대회’현장을 취재하기도 했어요. 전 세계 여성들이 모여 여성 권익 향상을 위해 열정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보며 개인의 작은 힘도 모이면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기자로 일하면서, 역사가 움직이는 순간도 봤다. 그는 그 당시 현장을 회상하며“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던 순간에도 직접 그 현장 상황을 보도했다”며“우리나라의 삼풍 백화점이 붕괴 됐던 그 날도 백화점이 무너진 현장에 가 당시의 참혹했던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고 말했다.

문화스포츠에디터로 보도국 부국장에 오르기도 한 김 수석비서관은“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지기 위해선, 사회제도가 잘 정비되고 정책이 올바르게 정착, 시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기자였을 때부터 가진 그의 지론은 현재 그의 업무로 이어지고 있다.

“기자는 사회의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때로는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자가 돼 사회의 움직임에 관여할 수 있었어요. 이런 기자로서의 오랜 경험과 훈련이 현재의 나의 밑바탕이 됐다고 생각해요.”

오랜 기자생활로 세상 단면단면을 봐온 그이지만 국회의 모습을 바라본 그는 아쉬움을 느꼈다.

“국회의 현장을 보며 성숙한 토론문화 정착이 필요함을 느꼈죠. 국회가 민주적인 모습을 갖추려 노력해야될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국회의원들이 여성들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 가는데 더욱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국회의장을 도와 국회가 먼저‘가정친화적 일터’의 모범이 되는 계획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의 노력은‘2010년도 국회 운영 방안’에 임산부 탄력 근무제, 육아 휴직 장려, 가정의 날 지정 등의 계획으로 반영됐다.

“국회가 먼저 일하는 여성이 가정을 병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모범적인 일터가 되도록 할 겁니다.”
여성과 남성이 다함께 행복한 사회를 위해 그는 달리고 또 생각한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촉박한 감이 있지만 그가 내딛는 한 발은 더욱 좋은 사회를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전하경 기자 jhk0712@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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