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총성이 채 사라지지 않은 1954년 2월12일(금), 이대학보사는 출판부 산하에서 첫 호를 발간했다. 이후 비정기적으로 발행되던 본지는 1960년 지금의 주간지로 정착했다. 본지는 1984년 학생편집국장제를 도입하고 취재부, 논설부, 학술부, 특집부, 문화부, 사진부로 구성된 부서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21명의 주간교수와 500여명의 학생기자를 배출했다. 이대학보가 올해로 창간 56주년을 맞았다. 반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본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을 모색해 왔다. 질 좋은 신문을 위한 본지의 장기 마라톤, 그 땀방울의 흔적을 따라가 봤다.


△대학 최초로 랜 시스템(LAN System) 설치


이대학보는 1993년 대학신문 최초로 전산기를 구입해 학보사 내에 네트워크(LAN System)를 구성하고 사내 업무를 전산화했다. 이로써 본지 기사는 당시 조판소인 경향신문사에 파일형태의 문서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기사를 담은 디스크(disk·컴퓨터보조기억장치)를 마감이 끝나는 새벽에 조판소까지 직접 들고 가는 수고를 덜수 있었다.


본지 50기 기자 장성희(영문·96년졸)씨는 “랜 시스템 구축은 인터넷 보급이 생소했던 그 시절에는 획기적인 일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첫 걸음마를 떼기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장씨는 “조판소까지 가는 택시비를 절약하고 다리 발품을 줄인 만큼 부작용도 많았다” 고 말했다.


랜 시스템이 불안정해 오류가 많았고, 그 때문에 기자 한 명이 학보사에 끝까지 남아 조판소에 기사 파일이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했다.


장씨는 “시스템 도입 초기라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익숙해질수록 신문 제작의 효율성이 높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주간교수는 “취재원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정립해 오보를 예방하고 이대학보의 신뢰도를 높이고자 FCD를 제안했었다” 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당시 FCD는‘뉴요커(The NewYorker)’잡지 같은 미국 주요 언론사에서 도입됐었다” 며 “우리나라에서는 이대학보가 최초로 도입한 것” 이라고 말했다.


본지의 도입 이후 일간지인 중앙일보도 FCD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FCD 작업은 마감이 끝난 후인 토요일 저녁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기자였던 73기 채라다(국문·08년졸)씨는 “FCD 도입은 신문제작의 한계점을 극복시켜 학보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며 “본지가 이 제도를 도입한 첫신문사인 만큼 이를 꾸준히 이어갔으면 한다” 고 말했다.


△편집 프로그램 어도비인디자인으로 변경


이대학보사는 2010년 1학기부터 조판 편집 환경을 개선해 신문 작업의 효율성을 높일 예정이다. 조판작업에 쓰이는 기기는 맥킨토시(Macintosh) 컴퓨터에서 윈도(Window)로 전환하고, 편집 프로그램을 쿽(Quark)에서 어도비인디자인(Adobe InDesign)으로 변경한다.


최아란 국장은 “인디자인은 사용하기 편한 인터페이스, 강력한 호환성, 뛰어난 그래픽 효과, 편집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며 “기존 프로그램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판단돼 이번 학기부터 인디자인으로 편집할 것” 이라고 말했다.


류철균 주간교수는“보편적으로 쓰이는 윈도 운영체제의 인디자인으로 편집 프로그램을 변경하는 것은 일반기자들이 직접 디지털 편집을 할 수 있는 친근한 환경을 제공할 것" 이라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러한 환경은 일반기자와 편집기자의 경계를 허물 것” 이라며 “더 나아가 이대학보가 디지털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한나 기자 hjnh87@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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