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한 학교를 등지고 오르는 기숙사 언덕길. 길의 끝에 서면 빛바랜 슬레이트를 얹은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풍경이 보인다. 그곳은 저소득 가구가 몰려있는 북아현3동, 속칭 ‘아현동 쪽방촌’이다. 이 일대는 도시의 불빛에 가려진 그늘이다.

△살기 위해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
종합사회복지관 정문으로 나와 여차하면 넘어질 것 같은 좁은 골목길들을 지나 김영순(가명·69)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공주가 고향인 할머니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를 따라 연세대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곧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은 할머니는 평택, 마산, 부산의 친척집들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다시 상경하게 된 것은 5.16 군사 쿠데타 직후, 결혼하게 되면서다.

서울에서도 이곳저곳 떠도는 생활은 계속됐다. “나나 영감이나 전쟁 통에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으니 떠돌 수밖에 없었지.”

떠돌던 끝에 지금의 일곱 평짜리 이 집을 마련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일곱 평짜리 집은 지난 2년간 할머니의 세계 전부였다. 2007년 겨울, 집 밖을 나서자마자 시작되는 비탈길에서 넘어져 무릎 연골이 찢어졌다. 두 해를 꼼짝 못하고 방안에서 누워 지냈다. 골목 끝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갈 수 없어 집 안에 환자용 변기를 두고 사는 생활이 이어졌다. 친구 딸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기는 했지만 병원비가 문제였다. “이 일곱평짜리 집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지원도 받을 수 없었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2007년 7월, 이혼을 선택했다. 한 가구당 나오는 지원비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이혼 후 개별 지원을 받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살기 위해서 이혼한거지 뭐. 우리가 늙어서 이혼하고 싶었겠어. 자식도 없고, 의지할 데라고는 영감뿐인데.”

이혼을 했음에도 2천만원의 빚이 있었던 할머니는 결국 올해 유일한 재산이었던 집을 팔아야만 했다. 그러나 집을 판 돈으로는 당뇨, 혈압으로 고생하는 할머니의 약값을 충당하기도 벅차다.

할머니는 아직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의 유일한 수입은 인근 추계초등학교에서 일주일에 3일 오전8시∼11시까지 아이들 교통지도 후 받는 월 20여만원이 전부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할머니의 유일한 수입원도 사라지게 된다. 할머니는 “여름방학에도 일이 없어 힘들긴 했지만, 난방비 많이 드는 겨울방학이 더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죽는다 한들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에 떠는 할아버지
박영식(가명·78) 할아버지는 추운 날씨에도 집을 나선다. 할아버지는 중앙선 지하철을 이용해 아현역에서 약 1시간30분 거리의 국수역까지 가곤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지하철 여행은 전기장판으로 발생하는 난방비 부담에 어쩔 수 없이 떠도는 것이다.

정문과 이대역을 잇는 길에서 C커피 전문점과 ㅂ토스트 전문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언덕길이 나온다. 이 언덕길을 오르면 부엌과 화장실의 구분 없이 5평 남짓한 충현동의 박영식 할아버지 집이 나온다.

할아버지가 ‘독거노인’이 된 것은 2005년 11월부터다. 할아버지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충청남도에서 작은 과수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처남의 사업 보증을 선 것이 잘못돼 모든 것을 잃고 2001년부터 서울로 이사와 자녀들과 함께 살게 됐다. 그러나 자녀들의 사업도 이내 기울었다. “그 때는 집안에 있는 것은 죄다 팔아서 뒷감당을 해야 할 상황이었어.”

할아버지가 모든 빚을 떠안았고, 자녀들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때, 부인도 할아버지를 떠났다.  “빚을 내가 감당하는 대신 자녀들이 부인을 부양하기로 한 거지” 그 후로 가족들과의 연락은 두절됐다.

할아버지는 당뇨가 있어 식단에 신경 써야 하지만,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식사는 한 끼에 불과하다. 따뜻한 식사는 서대문 복지관에서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과 하는 점심식사가 전부다. 점심에 복지관에서 집으로 배달된  ‘사랑의 도시락’은 할아버지의 저녁 식사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도시락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국가 유공자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당뇨, 심장병 등을 앓고 있어 하루에도 십여 종류의 약을 먹어야 한다. 워낙 많은 약을 복용해 위를 보호하는 약까지 따로 먹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받는 돈은 방세, 수도세, 전기세 등을 제하면 남는 것이 없다. 국가 유공자로 인정돼 연금 8만원이 지급되지만, 이 돈은 소득으로 분류돼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부족한 생계비나 육신의 고통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저녁에 눈 감을 때마다 두려워. 이렇게 자다 죽으면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누가 알겠어. 그냥 몇 날 며칠 홀로 있을 내가 가엾지.” 

글·사진: 최슬기 기자 redwin2026@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