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를 진료하면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아요. 그들의 삶을 통해 어떤 일에도 담대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배웠어요.”

서울역 13번 출구 앞에 위치한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다시서기진료소’는 노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다. 이 진료소에서 내과 전문의 최영아 의무원장(의학·95년졸)은 분주하게 노숙자를 치료하고 있다. 다일천사병원 의무원장, 요셉의원 의무원장을 역임한 최 원장은 2001년부터 노숙자를 위해 무료의료봉사를 해 왔다. 그를 11월24일(화) 다시서기진료소에서 만났다.

“중학교 시절, 노숙자를 많이 봤었지만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러다 의예과 2학년부터 10여년 간 자원봉사를 지속하며, 소외된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지요.”

레지던트 과정 중 최 원장은 응급실에서 ‘노숙자’, ‘행여’라는 이름으로 오는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자주 지켜봤다. 이들이 진료비를 낼 수 있을지 불분명해 병원 원무과에서 진찰을 허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가장 힘든 사람,  위중한 사람을 먼저 치료하라고 배웠는데, 현실은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했어요. 이때 노숙자를 위한 의료봉사에 자신의 인생을 평생 바치기로 결심했지요.”

노숙자를 위한 무료진료소 건설을 결심한 최씨는 2001년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자마자, ‘영등포 슈바이처’라 일컫어지던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을 찾아갔다. “선우경식 원장님의 도움으로 가평 꽃동네, 인평마을 등 여러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어요. 대학병원에서 본 환자보다 더 위중한 환자들, 어릴때 중증장애로 버려진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제 일에 확신을 가졌죠.”

최 원장은 선우경식 원장님의 도움과 기독교인의 헌금으로 2002년 10월 다일천사병원을 개원했다. 2004년 11월까지 다일천사병원에서 의술을 펼친 그에게는 한 노숙자의 기억이 가슴 한 켠에 묻혀있다.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던 노숙자를 치료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경찰로부터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어요. 경찰이 노숙자에게 제 연락처밖에 없다고 하면서 가족이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10년 넘게 노숙자를 돌보며 그들을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저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가슴이 짠했죠.”

이제 그에게 노숙자는 가족과 같다. “노숙자도 우리 가족과 비슷한 사람이에요. 그들도 사랑을 주고 받기를 원하는 따뜻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2년간 봉사활동을 한 다일천사병원은 그에게 잘 맞지 않았다. “다일천사병원에서 보람도 느끼고 즐기웠지만, 종교단체이다보니 종교를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셉의원도 가톨릭 단체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개신교였던 저에게 개종하길 원했죠. 개종까지 생각했던 저에게 서울시 재정으로 운영하는 다시서기진료소가 제게 손을 내밀었죠.” 결국 그는 올해 초 다시서기진료소로 옮겨왔다.

“치료한 노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기억난다”고 말하는 그는 10년간 제대로 된 의사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최 원장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외과 의사인 남편은 그의 유일한 조력자다. “남편이 많이 도와줘 10여년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죠. 의료인력이 부족하면 수술도 해주곤 해요.”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다”는 최씨의 꿈은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멋진 시설을 갖춘 진료소라도 환자들을 착취하는 시설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초기에는 크고 멋진 진료소 건립이 목표였지만, 이제는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하나된 마음으로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정이슬 기자 iseul1114@ewhain.net
사진: 안은나 기자 insatiable@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