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어에 살라(sala, 홀)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이 살라(sala)로부터 이탈리아어 살로네(salone, 큰 홀)가 생겨났고, 살로네(salone)는 다시 불어 쌀롱(salon)이 되었다. 이 쌀롱(salon)에 -s가 붙어 복수형이 되면 ‘사교계’라는 의미가 되고, s-를 대문자로 쓰면 ‘미술전람회’나 ‘(자동차 등) 공업제품의 전시회’를 지칭한다.

한국에서 ‘쌀롱’은 대개 ‘룸쌀롱’을 연상시켜 그 어감이 그리 좋지 않으나, 프랑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룸쌀롱은 room과 salon의 합성어로, ‘역전앞’과 마찬가지로 같은 의미의 두 단어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쌀롱은 프랑스의 역사에서 문화적으로나 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7세기 초, 프랑스 왕 앙리(Henri) 4세는 기나긴 종교전쟁을 거치면서 거칠 대로 거칠어진 귀족들에게 귀부인들의 우아한 언행을 가르치기 위해 궁정 안에 쌀롱을 열었는데, 이것이 쌀롱 문화의 시초다. 이 쌀롱의 전통은 궁정으로부터 귀족들의 저택으로 옮아갔다.

이탈리아 출신인 랑부예(Rambouillet) 후작부인이 연 쌀롱에는 히슐리으(A. Richelieu)와 같은 정치가들과 말레흐브(F. de Malherbe)와 같은 문인들도 단골로 드나들었다. 쌀롱은 사랑·정념·재능·명예·야심 등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들을 심도 있게 논하면서 생각과 언어를 세련시켰고, 모랄리스트 문학의 보금자리로서 잠언·인물묘사 같은 독특한 문학 장르를 탄생시켰으며, 고전주의 문학을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쌀롱은 이런 문화적·문학적 의미는 망각한 채 남녀가 은밀히 만나 술 마시고 춤추는 퇴폐적인 장소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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