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09 세계인구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04∼2008년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전 세계 평균(2.54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22명으로 나타났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21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치이다. 합계출산율이 인구대체수준(2.1명) 이하로 떨어진 1983년(2.08명) 이래 출산율 하락 현상이 지속되어 왔지만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출산율이 1.5명 이하로 하락한 2000년 이후의 일이다. 

여성지위 상승이 출산율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는데, 이러한 주장은 최근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경험에서 반박되고 있다. 서구의 학자들은 출산율은 성 평등 수준과 정적(positive) 관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즉 성 평등 수준이 높고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일(직업)과 가족을 양립할 수 있으며 가족 내에서 남성의 가사 및 육아 참여가 높을 때 출산율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정치 및 경제 분야의 남녀 관리직 비율, 남녀 소득비율 등으로 평가하는 여성권한척도(GEM, Gender Empowerment Measurement)와 OECD 회원국의 출산율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보면 GEM이 높은 사회에서 출산율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안정적인 출산율을 보여주는 프랑스(1.88명), 노르웨이(1.89명), 스웨덴(1.87명) 등은 성 평등의 수준이 높은 나라이고, 낮은 출산율 때문에 고민하는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일본(1.26명), 싱가포르(1.26명), 독일(1.32명) 등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증가에 따라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 및 양육담당자’라는 전통적 성별 분업(gender division of labor)은 완화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가족 내 성역할 분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8년 기혼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50%인데 반해, 가사노동에 있어서는 ‘여성이 주로 부담’하는 비율은 89.5%, 공평하게 분담하는 경우는 9%에 불과하다.

‘매니저 엄마’ 담론이 보여주듯, 자녀 교육 경쟁을 위한 어머니 책임 또한 강화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은 여전히 여성의 노동 시장 이탈의 가장 큰 이유이며, 자녀 교육과 직업 사이에서 취업 어머니들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직장과 자녀양육을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우며, 출산을 연기하거나 포기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성역할 분담이 남성들의 결혼 및 자녀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요즈음 젊은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일찍 결혼하여 평생을 가장으로 가족부양의 부담을 지고 싶어 하지 않으며, 때로는 결혼과 자녀 출산을 회피하거나 시기를 늦추려고 한다. 지금까지 당연시 해 왔던 성별분업은 남녀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저출산 정책 효과를 분석한 인구학회에서는 여성의 시간제 근로, 양육비 절감 등의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늘릴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저출산 정책 시뮬레이션 결과 여성의 정규직 탄력근무제가 도입되면 1.38명, 영유아 보육시설이 확충되면 1.81명까지 늘어날 수 있으며, 여기에 사교육비 절감까지 이루어지면 2.31명까지 합계출산율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책들이 시행된다면 현재 여성에게 부과된 과중한 부담은 어느 정도 덜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양육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여성에게 부과하고. 가족 내 성별분업을 유지한 채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여 지원하는 정책은 ’성 평등‘을 지향한다고 볼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출산장려나 친가족(pro-family)정책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보다는 공·사 영역에서의 불평등한 젠더관계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출산율의 안정은 전통적 성별분업과 가부장적 질서에 도전할 때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는 그 속도에 준하는 급진적인 사고나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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