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선로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저기 뛰어들면 쉴 수 있겠지.”

약 한 달 전, 필자의 친구 ㄱ씨는 우연찮게도 중간고사와 팀프로젝트(팀플), 영어공인인증 시험을 같은 주에 보게 됐다. 위는 평가제도의 홍수 속에 휩쓸리다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ㄱ씨가 한 말이다.

지독한 우연일까. 필자는 올해에만 네 번의 장례식에 다녀와야만 했다. 그 중 세 번은 문상객이 적어 밤새도록 지인들 몇과 모여앉아 빈소 한 구석을 지켰다. 영정사진 속 고인들은 하나같이 주름 하나 없는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기 뛰어들면 쉴 수 있겠지.” 평범한 20대라면 비슷한 대사를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는 스스로 나지막이 읊조려본 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대개 이 대사의 무대는 길이 된다. 길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하철이 지나는 길부터 기차가 지나는 길, 꽃잎이 지나가는 순간의 길, 사람이 지나지 않는 길까지…. 길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영원한 도피의 욕망을 불러들인다. 어떤 사회적 구조 안에서 이 길은 ‘자살길’로 변하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08년 6월 건강 자료(Health Data)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국이며, 전체 사망자 중 51.4%가 자살로 죽은, 10년째 자살률 1위 국가다. 또 4월10일(금)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임두성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04∼2008년 자살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21∼30세 자살자 수는 2004년 1천161명에서 2008년 1천435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연령대의 자살 동기는 염세, 비관이 45.7%(2만9047명)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우리는 이에 어떤 물음을 던져야 할까. 정부는 2004년 ‘자살예방 종합대책 5개년 계획’을 수립해 2010년까지 자살 사망률을 2003년 대비 20% 감소시킨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대책 시행 후에도 자살률은 줄지 않았다. 2006년∼2009년 임두성 의원(한나라당), 강창일 의원(민주당) 등이 자살예방법 마련에 대한 법안을 냈지만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자살 예방 대책에 대한 희망은 없는 것일까.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민영신 사무관은 20일(금) 의료신문 메디컬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살한 사망자의 유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조사해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밝히기 위한 방안으로 심리학적 부검을 실시하고자 했지만 우리나라의 정서상 자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신건강에 관련된 예산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며 관련 법이 없다 보니 예산을 받을 근거가 없다”며 “배정된 예산 5억3000만원 중 1억 원은 자살 사례를 수집하는 연구용역을 진행해 데이터를 축적시켜 자살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올해에만 세 번 욕실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었다. 얼굴을 묻었다. 이만 수도꼭지를 잠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떠난 사람들에게는 수도꼭지를 잠가줄 여유가 없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 휴식은 1억 원을 들여 자살 사례를 수집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다.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촉구되야 할 것이다. 이제 수돗물 맛 좀 그만 맛보자.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쓰는 편지』에서 청춘들에게 남긴 한 마디를 달아본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가능할지 모를 모든 것을 고독한 사람은 지금부터 준비하고 그들보다 실수가 적은 그의 두 손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고 고독이 만들어내는 고통을 당신의 아름답게 울리는 비탄으로 견디도록 하세요. 왜냐하면 당신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멀리 느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것이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의 영역이 이미 별들 바로 밑에까지 다다를만큼 커졌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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