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희귀한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것으로 서커스가 있다. 어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천막 속에 들어가 솜사탕을 빨고 있노라면,  요란한 음악소리와 더불어 광대들의 춤사위가 이어졌다. 하지만 서커스의 최고봉은 ‘공중 그네타기’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통사람 같으면 서있기만 해도 아찔할 것 같은 위치에서, 줄 하나만을 의지하여 온갖 묘기를 부리는 재인(才人)들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흐르곤 했다.

위험한 재주는 그들이 부리는데 막상 내가 겁이 났던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실수하여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중 그네타기를 하는 무대에는 대개 잘 보이지 않지만, 안전그물망이 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조금 나이가 든 다음이었다. 최선을 다하여 재주를 부리다가 만에 하나 실수로 떨어지더라도, 다소 망신을 당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이와 같은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재인들이 더욱 과감한 재주를 부릴 용기를 낼 수도 있겠다는 판단도 하게 되었다. 실수로 추락하여 크게 다칠 우려가 있다면 아무래도 몸을 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도들이 있다. 직장인들이 열심히 일했지만 원치 않는 상황에서 실직을 하게 될 경우, 다시 직장을 찾기까지 심각한 재정난에 처하지 않도록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치열한 생존경쟁에 뒤쳐져서 극빈층 또는 차상위계층에 놓이게 될 경우, 넉넉하지는 않지만 국가나 지방정부가 지급하는 사회복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을 사회안전망이라 부른다.

오늘날 우리가 택하고 있는 경제시스템은 자본주의이며, 이는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이 체제에 잘 적응하며 능력 있고 다소의 운까지 따르는 사람들은 풍부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아쉬운 단어를 아프게 되씹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안전망이 잘 준비되어 있다면, 보다 안정감을 갖고 자신 있게 경제생활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려면, 이들이 갖춰지지 않은 사회에서 발생할 부작용들을 생각해보면 된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뎌 추락사할 가능성이 큰 경우 공중 그네타기가 소극적으로 재미없게 이루어지듯이,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보다 근시안적으로 판단하며 물질에 대한 의존이 더 커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사회는 더욱 각박해질 것이며, 우리의 삶은 보다 피곤하고 덜 행복해질 것이 자명하다. 이에 반하여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설령 불운한 경우를 닥치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삶의 질이 보장된다고 하는 믿음이 있다면, 이것이 우리를 얼마나 평안하게 해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지나치게 두텁게 구성될 경우 걱정되는 것이 ‘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이미 일부 차상위계층에서는 스스로 일을 해서 먹고 살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에 안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대다수 국민들은 사회안전망에 기대어 살기 보다는 열심히 일해서 자립(自立)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도덕적 해이 현상으로 인해, 사회안전망 구축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의 효율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중 그네타기를 가장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기발한 창의력과 과감한 용기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여 멋진 묘기를 보여준 재인(才人)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주되,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불운하게 추락할 경우 큰 부상이 없게끔 안전망을 튼튼하게 설계해주는 것이다.

잘했을 때 보상도 넉넉하게 해주어야 하지만, 못했을 때도 크게 다치지 않도록 해주는 사회가 바람직한 선진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장경쟁과 사회안전망 강화는 동시에 추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2009년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쯤 와있다고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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