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의 난을 통해 본 한국사회
루저의 난을 통해 본 한국사회
  • 김아영(사회·국제부 차장)
  • 승인 200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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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온라인에서 ‘대란’이 일어났다. 우리 시대의 루저(loser·패배자)들이 일으킨 ‘난(亂)’이었다.

‘루저의 난’은 9일(월) 방영된 KBS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 출연한 여성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이 여성은 미수다 ‘여대생 특집편’에 캠퍼스 퀸으로 출연해 “자신의 키가 170cm이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키가 180cm는 돼야 한다”며 “남자의 키는 경쟁력이고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말했다.

‘루저’ 발언은 대다수 남성들에게 패배감을 안겨주었고 ‘덕분에’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순위 1위로 올라섰다. 이 후 누리꾼들은 ‘루저’ 발언을 한 여성을 ‘루저녀’라고 부르며 온갖 패러디를 쏟아냈고 키 180cm 이하의 ‘루저’ 중 한 명은 언론중재위원회에 K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발언을 한 여성은 하루아침에 모든 사생활이 공개됐다. 누리꾼들은 포털사이트인 구글을 통해 ‘루저녀’의 정보를 수집했고 방송 종료 후 한 시간도 안 돼 미니홈피 주소와 고등학교 졸업사진 등이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았다. ‘루저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ID로 게재된 게시물은 낱낱이 공개됐다. 성형외과 사이트에 남긴 글, 학교 게시판에 올린 장학금 문의 등 ‘그녀’의 과거를 추정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이 누리꾼에 의해 모아졌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루저녀를 학교에서 제적시켜야 한다’는 서명운동에 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온라인상에서 검색한 ‘루저녀’의 신상 정보를 공개해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한 누리꾼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루저녀’의 발언에 대한 누리꾼의 ‘응징’은 적절한 대응이었을까? 외모, 특히 위너(winner·승리자)가 되는 신장을 객관적으로 제시해 차별을 야기한 ‘루저녀’의 외모지상주의 발언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닌, 개인의 ‘사생활 캐내기’에 초점을 둔 누리꾼의 모습은 ‘루저 발언’을 한 여성에 대한 ‘보복’에 불과하다. 게다가 키가 180cm이상인 남성 중 일부는 ‘위너’ 자리에 올라 성취감에 취해 있다. ‘난 기준을 넘은 승리자’라는 것 이다.

우리가 지양해야할 것은 ‘루저 발언’을 통해 나타난 한국사회에 자리 잡은 외모지상주의다. 특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에 대한 발언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루저의 난’은 미수다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 해당 발언을 편집하지 않고 방송했으며 ‘loser’라는 자막을 넣어 문제 발언을 부각시켰다.

더 큰 문제는 미수다 제작진과 MC가 던진 질문에 있다. ‘루저녀’가 문제가 된 발언을 하게 된 것은 외국인 ‘미녀’와 한국인 ‘여대생’으로 대표되는 두 집단의 연애관을 비교하는 질문에서 비롯됐다. 질문은 ‘나는 키 작은 남자와 사귈 수 있다’였다. 모든 질문은 질문자의 ‘주관성’을 내포한다. 이 질문에는 ‘키 작은 남자는 키 큰 남자보다 매력이 없다’는 주관성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주관성이 미수다’작가만의 것인지, 한국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것인지는 논외로 하자. 외모지상주의를 함의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키가 작은 남성은 매력이 없지만 괜찮다’와 ‘키가 작은 남성은 역시 매력이 없다’는 두 가지 대답만 가능했다. 세계 모든 여성들은 ‘키가 작은 남성을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전제가 담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은 키가 180cm 이상이어야 한다”는 발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한 여성의 이상형’일 뿐이었음에도 질문에 내포된 ‘키 작은 남성은 매력이 없다’는 명제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 

‘비난’을 통한 ‘마녀사냥’은 ‘마녀’ 한 사람만 제거할 뿐,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던지는 ‘질문’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변화해야 할 사람들은 ‘루저녀’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로 이번 ‘루저 발언’의 패배자는 외모지상주의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사회 전체다. 아무래도 외모지상주의를 자신있게 내보이는 ‘루저녀’와 외모지상주의를 경멸한다는 ‘루저’들로 한국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