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5일(토), 한 언론 매체는 교포3세인 가수 2PM의 멤버 박재범씨가 한국 비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가 가수 데뷔 전 미국소셜네트워킹사이트 마이스페이스에 ‘나는 한국인이 역겹다(I hate Koreans)’는 내용의 글을 썼다는 것이 중심 팩트(Fact)였다.

이 보도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자 다른 매체들 또한 너도나도 박씨의 한국 비하 발언을 보도했으며, ‘박씨는 한국을 모독한 교포3세’라는 여론이 형성됐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보도에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고, ‘너의 나라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박씨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결국 박씨는 소속 그룹에서 자진 탈퇴했으며, 자신의 고향 시애틀로 돌아갔다.

이 논쟁은 박씨의 탈퇴로 일단락 지어지는 것 같았으나 네티즌 여론이 갑자기 변화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발점이 네티즌들의 마음속인지, 기자들이 갈아 끼운 펜촉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박씨가 한국 비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던 언론사들이 하루 건너 ‘박재범의 글은 한국 비하 발언이 아니다’라고 줄줄이 보도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박재범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이는 우리 사회에서 언론 보도가 여론 형성에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9월15일(화) MBC PD수첩 <박재범 사태가 우리에게 남긴 것>편에 따르면, 9월5일(토) 최초 보도부터 9월8일(화) 박씨의 팀 탈퇴 및 출국에 이르기까지 박씨에 대한 보도가 4일간 약 760건이나 됐다고 한다.
‘박재범 사태’는 언론이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에 얼마나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다.

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은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요소」에서 언론의 9가지 의무에 대해 말한다. 그 중 가장 첫 번째 원칙이 바로 ‘진실 추구’다.
언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언론인들 모두가 ‘사실을 올바르게 포착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진실 추구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원칙임을 의미한다.

저널리즘에서 진실은 오랜 시간에 걸친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기자는 우선 잘못된 정보나 남을 속이기 위한 정보, 또는 자기 선전하는 정보를 제거한다. 보도 후에는 사회가 반응하고 기자는 다시 그 반응을 취재한다. 저널리즘은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진실을 얻고자 한다. 한국 언론 매체들은 저널리즘의 첫 번째 원칙 ‘진실 추구’를 지키지 않았다. 박씨의 ‘Hate’을 ‘역겹다’로 직역한 것은 고의의 낌새가 다분하다.

우리 언론 보도가 지키지 않은 또 다른 원칙은 ‘검증’이다. 박씨의 글은 보도 전 전문가에게 검증 받았어야한다. 게다가 언론은 박씨의 팀 탈퇴와 출국 후 동정론으로 보도 행태를 바꾸고 그때서야 ‘Hate’이 오역임을 보도했다. 이후 보도는 자신들의 오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 여론을 바꾸는 후속 보도였을 뿐이다.
이대학보사는 ‘진실’과 ‘검증’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Fact Checking Desk(FCD)’를 시행하고 있다. FCD는 신문이 발행되기 전 취재원의 멘트 및 기사에 인용된 자료를 FCD 전문기자가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다. 수습기자 시절, FCD를 거치며 필자의 기사에 난 오류수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진실’보도란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검증’은 꼭 필요한 절차다.

자신의 영향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언론인들이 ‘진실’과 ‘검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박재범 사태’라는 커다란 냄빗물 끓이기에 동참한 모든 언론들은 반성해야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 대중도 감시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 대중은 보도 행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닌 한 사안에 대한 본질을 파악해내는 돋보기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언론과 시민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때, 원칙을 지키는 저널리즘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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