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창립자 스크랜튼 후손 간담회’가 10월6일(화) 오전10시30분 진선미관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이배용 총장과 스크랜튼 선생의 4대손, 5대손 8명이 참석했다.

스크랜튼 선생은 한국을 찾은 첫 번째 여선교사로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 의사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의료, 교육 봉사를 했다.  스크랜튼 선생이 별세한 후 아들 가족이 한국을 떠나며 후손과는 연락이 끊겼다. 그러나 스크랜튼 연구가인 엘렌 스완슨씨가 후손을 찾아내 10월5일(월) 후손들의 본교 첫 방문이 성사됐다.

­-이화여대에 처음 방문한 소감이 어떤가
샐리 게일(스크랜튼 4대 후손) : 10월5일(월) 스크랜튼 기념 채플 참석이 첫 일정이었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학교와 학생 모두 스크랜튼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리 F.스크랜튼에 대해 알고 있었나
안드레아 패튼(스크랜튼 4대 후손의 배우자) : 배우자인 폴 패튼이 스크랜튼의 후손으로, 나는 스크랜튼의 핏줄은 아니다. 그러나 남편은 나를 처음 만난 날, 스크랜튼 선생의 이야기를 해줬다. 직접 스크랜튼가 가족들을 뵌 적은 없지만, 스크랜튼 3대손인 시어머니가 소장하는 액자를 본 적 있다. 시어머니는 식구들이 한국과 일본에 거주했을 당시 주고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관하고 있다. 

폴 애딩턴(스크랜튼 5대 후손) : 할머니를 통해 스크랜튼 선생에 대해 들었다. 할머니가 일본과 영국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본 기억이 있다. 당시 사진들을 통해 윌리엄 스크랜튼의 딸들이 서로 가깝게 지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할머니께 내가 체험한 스크랜튼 선생의 이야기를 하게 돼 기쁘다.

토마스 데이비스(스크랜튼 4대 후손) : 스크랜튼 선생이 하신 일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와 그의 업적의 규모를 실감해보니 감동적이고 놀랍다.

벤 패튼(스크랜튼 4대 후손) : 스크랜튼 선생이 한국에서 한 일은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전해 들은 정보는 주로 1930년대의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일이 이렇게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을 알지 못했다. 오래전 심은 나무들이 훌륭히 가꿔져 거목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본교와의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케빈 게일(스크랜튼 4대 후손) : 이화여대에서 본 자료와 사진 등 스크랜튼 선생에 대한 기록을 가져가 후손에게 그 업적을 알릴 것이다. 우리의 자녀 세대가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 더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샐리 게일(스크랜튼 4대 후손) : 한국과 미국의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 자주 올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초청해준 이배용 총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샐리 게일(스크랜튼 4대 후손) : 스크랜튼 선생과 그녀의 아들인 윌리엄 스크랜튼은 한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왔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스크랜튼 선생의 창립정신을 기억해 매주 채플에 참석하고, 지식을 연마하고, 기독교 정신을 함양하는 것에 기쁘다. 

케빈 게일(스크랜튼 4대 후손) :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두려움에 떠는 타국의 여학생을 따뜻하게 안아준 것, 이것이 스크랜튼 선생이 보여준 사랑이다. 나는 부모로서 내 자녀들에게 이러한 사랑의 정신을 물려줄 것이다.

한주희 기자 hjh230@ewhain.net
사진제공:홍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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