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리(국제·07)씨와 서아현(국제·06)씨가 집시풍으로 차려입고 맨발로 무대에 섰다. 악기는 키보드와 봉고(쿠바 등 중남미 지역의 드럼류 악기)가 전부다. 맨손으로 두드리는 봉고 소리에 몽환적인 음색의 키보드 반주가 얹혔다. 오예리씨가 휘파람과 함께 그의 창작곡 ‘군계무학’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돈, 돈이란 절대군주가 통치하는 세상, 손때 묻은 토익 책 움켜쥐고 오늘도 쓴다 망할 자소서.”

오예리, 서아현씨로 구성된 ‘이대 나온 여자’팀은 취업난 속 획일화돼가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표현한 자작곡 ‘군계무학’으로 25일(금) 2009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과 특별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노래에 대해 “가장 특별한 빛깔과 향기를 뿜어낸 팀”이라고 평했다.

대상을 안은 오예리씨는 울음부터 터뜨렸다. 음악을 하려고 21살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25세에 대학가요제에 참여하기까지, 그간 다난한 일들이 떠올랐다.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이대 나온 여자’ 중 오예리씨를 교정에서 만났다. 서아현씨는 오예리씨가 노래를 만든 후 7월에 팀에 합류했다. 서씨는 “이대 나온 여자는 오예리씨가 중심이 돼 활동한 팀”이라며 인터뷰에 참여하지 않았다.

‘군계무학’를 작사, 작곡한 오예리씨는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그는 악보를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피아노 지도만 받았고, 그 외의 모든 악기는 혼자 익혔다. 기타는 10살부터 줄을 튕기며 스스로 터득했다. “가족들 중 음악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이 없어요. 저만 음악을 좋아했고, 하고 싶어했죠. 혼자만 돌연변이 같아 고민도 많이 했어요.”

‘군계무학’은 마음이 아플 때마다 노래를 짓고 불러 속을 풀던 오예리씨가 대학생활에 답답함을 느껴 새로 구상한 곡이다. ‘군계무학’에는 젊은이의 자유스러움과 개성을 지키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원래는 작곡만 하고 내버려두려던 곡이지만, 곡을 완성한 김에 그는 대학가요제에도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7월에 본교 중앙재즈동아리 투파이브(Two Five)에서 활동하던 서아현씨와 팀을 결성했다.

이들의 본격적인 대학가요제 준비기간은 방학 동안의 2달 남짓이 전부였다. 오씨가 악보 없이 작곡하는 점이 오히려 이점이었다. 음표 없는 악보 덕에 그들은 더 자유롭게 연주하고 연습할 수 있었다.

팀명인 ‘이대 나온 여자’에 대해 본교생들은 ‘관심을 끌려는 것이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씨는 “팀명은 본교를 위한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영화배우 김혜수씨가 영화 타짜에서 했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로 우리 학교의 이미지는 많이 왜곡됐죠. 팀명을 통해 이대에도 다양한 개성을 지닌 학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남보다 늦은 나이에 본교에서 학업을 시작한 그는 IMF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사업 파산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졌고,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 받아 공부해왔다. 이에 오씨의 ‘이화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대학가요제에서 받은 상금은 빚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모두 본교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학생으로서 대학가요제에 참여해 곡을 내놓기까지, 그는 남다른 방황기를 거쳤다. 뉴질랜드에서 자라 오스트레일리아의 크리스천 헤리티지 대학(Christian Heritage College)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그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학교를 그만뒀다. 한국에 돌아와 틈틈이 작사, 작곡을 하는 한편 생계유지를 위해 여러 일선에서 뛰기도 했다. 23살에 그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생각에 본교 국제학부에 입학했다.

“다시 시작한 대학생활은 제게 또다른 속박이었어요. 대학에서 폭넓은 경험을 하고 싶었지만, 언제부턴가 저도 취업 준비에 쫓겨 남과 똑같이 살고 있었죠.” ‘군계무학’에 취업난과 대학생들의 삶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긴 것은 이 때문이다. 오씨는 “‘군계무학’은 IMF, 경제위기 등 힘든 시기를 거쳐온 대학생 중 하나로서 내가 느낀 점을 진솔하게 고백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대학가요제 수상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꿈을 이뤘다. 그러나 오씨가 원하는 것은 유명세가 아니다. “저의 노래와 사연을 알게 된 사람들이 ‘오예리도 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준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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