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교수(경영학과)
현대 경제학을 이루는 중요한 기초에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이 있다. 아담 스미스가 제창한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격이 오르게 되면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어나 가격이 균형점으로 하락하며, 반대로 가격이 내리면 수요는 늘고 공급은 줄어 값이 오른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항상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시장이 잠시 불균형 상태에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보다는 방관함으로써 오히려 시장자율기능에 따른 균형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멀리 내다볼 것이 아니라 당장 필자 자신만을 돌아보더라도 가끔씩, 또는 생각보다 자주 어리석은 행동을 할 때가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런 비합리적인 사람들의 집합인 시장이 과연 제대로 합리적으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라면 정부는 ‘시장의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필요한 상황에 적당한 강도로 시장에 개입하여 질서를 회복시켜줄 의무를 갖게 된다.

한편, 개인으로서는 합리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질서의 교란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흔히 말하는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가 나타날 경우다. 요즘 같은 금융위기 국면에서 합리적 개인이라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여 저축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만, 모든 소비자가 저축에 열중해 소비하지 않으면 불황이 심각하게 되어 소득도 줄고 결과적으로는 저축이 줄게 된다.

이렇듯 하나의 주체로서 인간, 그리고 그들이 구성하는 집합체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관점에 따라 경제학의 이론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결국 경제학이란 사람들의 행위를 설명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사회를 설계하며 또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를 시조로 하는 고전학파, 미국 시카고 대학 중심의 통화주의 학파, 이들 전통을 이어 받은 신자유주의 철학은 인간의 합리성과 시장의 완결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들은 오랜 시간 역사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경쟁, 효율성, 자본자유화, 유연한 노동시장, 연봉제 등 오늘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제도적 가치관을 정립했다.

그런데 2007년 금융위기를 맞아 이들 철학은 붕괴의 위기에 처한다. 시장에 맡겨두면 모든 것이 원리원칙대로 흐르고, 잠시 교란이 생기더라도 곧 균형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특히, 금융회사의 자율성 회복을 기치로 감독의 끈을 느슨하게 풀어버린 금융감독 당국에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은 날카롭기만 하다.

이들 학파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존 메이나드 케인즈를 거두로 하는 케인즈 학파다. 이들은 시장이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든지 균형을 이탈하여 불균형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도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기본 믿음은 공유하지만 신자유주의보다는 못하며, 설령 합리적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라 할지라도 합성의 오류로 인한 시장질서 교란이 자주 발생한다고 믿는다.

2007년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실망한 각국 정부는 일사불란하게 케인즈적 정책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세금을 감축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며, 한편으로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늘려 이른바 유효수요를 증진시키는 정책을 구사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적어도 단기적이고 표면적으로는 경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경제학의 양 학파 간 우열을 판가름하기는 아직 이르다. 회복 후 재침체를 의미하는 ‘더블 딥’이나 ‘W자형 회복’의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양 학파 간 논쟁은 이후에도 역사를 반복하여 계속 이어져 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논쟁의 배경에는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관점의 차이가 깔려 있게 마련이다. 필자가 늘 경제학과 인문학의 접경에서 고민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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