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의 끝은 대부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기자의 어떤 모습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인지 지난 한 주 동안 기자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다섯이다. 한 학기 휴학한 여유 때문일까? 매일 웃고 있는 얼굴 표정 때문일까? 누군가 당신에게 “행복합니까?”라고 물어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법이론가인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인간의 삶의 목적은 행복 추구이고 행복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1789년에 발표한 ‘도덕과 입법의 원리서설’에서 인간행위의 동기에 대해 상세히 기술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을 얻고, 고통이나 아픔은 피하려는 동기에서 출발한다. 희생이나 고통에 비해 가능한 한 많은 ‘행복 잉여분’을 얻으려는 노력이 인간 행위의 동기가 된다. 결론적으로 인간이라면 모두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은 돈, 외모 등 외적인 조건으로 충분히 이룰 수 있는 것일까?

독특한 연구 결과가 있다. 키가 큰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는 연구다. 프린스턴 대학(Princeton University) 연구팀이 ‘Economics &Human Biology’ 저널에 밝힌 연구 결과에 의하면 키 큰 사람들이 더 행복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다. 연구팀은 0~10의 숫자가 적힌 계단이 있는 사다리를 상상하게 한 후 과거 자신이 생각했던 행복한 삶을 0에서 10까지 매기게 한 후 현재 자신의 삶 역시 평가하게 해 두 지수를 평가했다.

연구 결과 키가 177.8cm 이상인 남성의 행복지수는 6.55, 이보다 작은 남성은 6.41의 행복지수를 보였고, 키가 162.4cm이상인 여성은 6.64, 이보다 작은 여성은 6.55의 행복지수를 나타냈다. 그러나 행복도가 가장 높은 사람들은 행복도가 한두 계단 아래인 사람보다 키가 약간 작은 것으로 나타났고, 195.6~198.1cm 이상의 키인 경우에는 오히려 삶의 행복지수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선한 주제의 연구였으나 결론적으로 소수점 한 두 자리의 차이만을 보인 결과다. 신체조건에 의한 행복지수라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반적인’ 요인이 필요할까? 최근에는 국민의 행복에 국가도 나섰다. 청와대는 8월18일(화) “국민의 ‘행복’을 현실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국민행복지수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국내총생산(GDP)을 지표로 사용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국민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 잣대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에 나선 것이다.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은 1960년대와 비교해 250배 이상 늘었지만 실제 삶의 질에 대한 만족도는 OECD 평균 0.69보다 크게 낮은 0.45다. 이 수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임을 보여준다. 2006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지난 10년간 꾸준히 소득이 증가함에도 한국인의 행복도는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은행이 집계한 지난 해 GDP에서 1위는 미국(14조 2천43억달러)이 차지했고, 일본, 중국, 독일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행복지수 순위는 재정 순위와 달랐다. 영국 신경제재단이 각국의 행복지수를 산출한 결과 국민의 85%가 ‘행복하다’고 답한 코스타리카가 1위를 기록했고 도미니카 공화국, 과테말라, 콜롬비아, 쿠바 등 중남미 국가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한국은 68위, 미국은 114위였다.

행복 순위를 보고 “우리와 처한 상황이 애초에 다르니까 그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처해진 상황에 안주한다면 우리들 개개인도 지금 모두가 행복해해야지 않은가?

행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인은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돈이, 키가 작다면 신체조건이, 학력이 부족하다면 준비된 경력이 아쉬울 것 아닌가. 남과 비교해 스스로를, 혹은 서로를 힘들게 하지 않고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자기 안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지금 사회에서 ‘행복’을 비교하기보다 내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요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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