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용 한파를 넘어, 고용 빙하기를 살아가는 나홀로족입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incruit.com)가 17일(목) ‘2009 대학생 취업 관련 신조어’를 주제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 삼일절(31세까지 취직 못하면 취업길 막힌다) 등 취업난을 반영한 대학생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시대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신조어다. ‘취업난 신조어의 삶’을 고스란히 살아내고 있는 대학생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취업 위해 대학생들 생활 패턴 변화해

올해 발표된 신조어들 중에는 ‘공휴족(恐休族·쉬는 것이 두려운 사람)’ 등 청년취업난의 현실을 반영한 것들이 많았다.

‘나홀로족’인 ㄱ(중문·07)씨는 2년째 중앙도서관 열람실에 매일 등교하다시피 해왔지만 친구와 만나거나 함께 공부하지 않는다. 점심도 매점에서 혼자 해결한다. 자격증 시험 준비와 아르바이트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려면 혼자가 편하기 때문이다. ㄱ씨는 “취업 5종 세트를 준비하려면 친구와의 만남은 사치”라고 말했다.

ㄱ씨가 말한 ‘취업 5종 세트’란 취업 준비를 위해 반드시 경험해야 하는 5가지(인턴십,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특이경력)를 뜻한다. 학생들은 이를 쉴 틈 없이 준비하느라 ‘공휴족’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공휴족이라고 소개한 덕성여대 임소영(국문·06)씨는 “경력 관리를 위해 외부활동 3개와 공모전 준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을 늘리기 위해 졸업을 연기하는 NG(No Graduation)족도 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휴학한 ㄴ씨(방영·06)는 “채용조건을 졸업예정자로 제한하는 기업들이 많다”며 “경력을 더 쌓기 위해 휴학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현재 취업을 위해 공인영어시험을 준비 중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7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0세∼24세 사이 휴학생은 40만2천명으로 작년보다 8만4천명 증가했다.

이밖에 대학생들의 구직 생활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신조어로 토폐인(토익만 열심히 공부했으나 취직도 못하고 폐인이 되는 사람), 강의노마드족(전공과목을 제쳐놓고 토익 등 취업에 도움이 되는 강의만 열성적으로 수강하는 사람) 등이 있다. 

△인턴 채용 증가로 새로운 신조어 등장

청년실업의 해소 정책으로 시행된 인턴사원제도가 빛을 발하지 못하면서 생겨난 신조어들도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career.co.kr)가 6월4일(목)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월∼7월) 행정인턴제도가 시행되고 기업들의 인턴 채용이 증가하면서 메뚜기인턴, 행인(行人)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다. ‘메뚜기 인턴’이란 인턴사원으로 입사했지만 급여, 채용 시 우대 등 조건이 더 좋은 인턴자리를 찾아 떠나는 사람을 뜻한다.

커리어가 6월12일(금)∼6월14일(일) 올해 상반기 인턴경험자 6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3.3%가 ‘인턴십 도중에 그만 둔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도중에 그만 둔 이유로는 ‘정규직 전환 등 조건이 더 나은 인턴자리로 가기 위해서’가 38.8%로 1위를 차지했다.

행인(行人)은 ‘지나가는 사람’이라는 뜻대로 일정기간 동안 잔심부름만 하다가 업무를 끝마치는 행정인턴을 의미한다.

6월 행정인턴으로 채용된 ㄷ(경영·08년졸)씨는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업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의욕이 떨어졌다. ㄷ씨는 “전공과 관련된 부서에 배정됐더라면 좀 더 배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라며 “업무의 대부분도 자율성 없는 단순 업무”라고 말했다. ㄷ씨는 또 “정부의 행정인턴제도는 사실상 ‘용돈 쥐어주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여성 일자리 질 낮아져…‘이퇴백’은 ‘U턴족’ 되거나 ‘방살이’한다

여성 일자리의 질이 뒷걸음질 쳐 일부 여성들이 퇴사를 선택하고 있다. 

노동부가 8월17일(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여성 대졸자 중 7월까지의 취업자 수는 15만5천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6천명 늘었다. 그러나 여성 대졸자의 임시, 일용직 취업률은 2007년 35.7%에서 2009년 49.1%로 13.4% 증가했다.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이퇴백(20대에 퇴직한 백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외환위기 당시 유행했던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 스스로 직장을 뛰쳐나오는 20대가 늘어나면서 ‘이퇴백’으로 진화한 것이다. 상당수의 ‘이퇴백’들은 ‘U턴족(사회 진출에 실패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사람)’이 되거나 ‘방살이(취업을 포기한 채 고시로 눈을 돌려 고시원을 전전하는 일)’를 시작한다.

올해 본교 일반대학원에 진학한 ㄹ씨는 “무역계열 중소기업에 취직했다가 5개월 만에 퇴사했다”며 “일단 어디라도 입사하고 보자는 마음에 취업했지만 연봉이 너무 낮았고 근무 내용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취업난에 대해 “이퇴백, 청백전 등의 단어는 사라지고 ‘청년실업제로(0)’ 등과 같은 신조어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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