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발표한 작품 모아 8월26일(수), 저서 출간…글그림 통해 독자와 소통 꿈꿔

검은 볼펜으로 그린 선이 흰 종이 위에서 춤춘다. 선과 선이 이어져 사람이 되기도 하고 풍경이 되기도 한다. 색연필로 색칠하자 여백은 고운 빛깔의 날개가 된다. 그림은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서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되도록 멀리 안기’라는 글귀와 함께 독자의 마음을 뒤흔든다.(작품 「멀리 안기」 중)

야심한 새벽, 본교 커뮤니티 이화이언(ewhaian.com)을 즐겨 찾던 이화인이라면 그를 알고 있으리라. 일명 ‘내가 그린 그림벗’이라 불리던 조선영(방영·09년졸)씨가 이화이언 비밀의화원(비원) 게시판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던 작품들을 모아 8월26일(수) 도서 「나 이상한가요?」를 출간했다. 9일(수) 조씨를 만나 그의 글과 그림(글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작년 여름부터 비원에 글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화인들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울었다는 분도 계셨고요.” 조씨가 2008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반년에 걸쳐 올린 10여개의 글들은 조회수 천건을 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의외의 결과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조씨는 2년간 비공개해뒀던 홈페이지(chosunyoung.com)를 열고 그간의 작품들을 업데이트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미술학원에 다니거나 예고에 진학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대학 입학 후 달라지기 시작했죠.”

그는 본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수강한 것이 창작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방송영상학과 실습 수업에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이미지프로그램을 배웠고 시각디자인 수업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또 경제학과부터 철학과 수업까지 다양한 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자유분방한 사고를 갖게 됐다. 그는 점차 적극적인 창작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신입생 시절, 모나미 볼펜으로 끼적거리던 낙서에 점차 색이 입혀졌다. 해가 갈수록 다양한 이미지와 메시지가 도화지를 꽉꽉 채웠다.

“처음에는 남에게 보여줄 엄두조차 내지 못했어요. 이게 시인지, 그림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혼자 시작하고 그려온 세월이 6년이었죠.”

졸업이 다가오자, 조씨는 그동안 그린 것들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간의 작품들을 제본해서 존경해오던 교수들에게 선물했다. 작품을 받아본 나은진 교수(국어국문학)는 칭찬과 함께 조씨에게 ‘책을 내보라’고 제안했다. 조씨는 작품집을 내고 전시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4월에 첫 번째 작품집이 나오고 홍대 근처에서 자그마한 전시회를 열었어요. 전시를 관람하신 분에게 소개받아 아트샵 몇 군데에서 작품집을 팔기도 하고요. 그러다 더 많은 독자들에게 그림을 알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내친 김에 그는 8월 중순, 출판사 20군데에 작품집을 보냈다. 다음 날 바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조씨의 첫 번째 도서 「나 이상한가요?」가 출간됐다. 필명은 ‘초선영’이었다. 정해종 시인은 그의 책에 “시집도 아니고, 화집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상식적인 책의 경계를 허무는 정체불명의 기묘한 책”이라는 서평을 달아줬다. 조씨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드러나는 평가다.

그는 자신을 ‘시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시인이라고 해야 할지, 화가라고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다 얻은 결론이다. 장르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 생각들을 글그림으로 표현하고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작품의 근원이 일상이라지만, 많은 작품 속에는 내면 깊숙한 상처와 남모를 사연이 숨어 있다. 작품 「못된 놈」과 「못된 놈, 못된 놈」은 연인과 이별 후의 감정을 나타냈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그 때의 ‘죽을 것만 같았던 자신’을 그림으로 재현한 것이다. 마음의 병을 앓는 친구에게서 모티프를 얻을 때도 있었다. 「웅크림」과 「울고, 토하고」는 지인들의 내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들이 모여 벌써 200여점이다.

“저는 주로 볼펜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펜을 오래 쓰다 보면 볼펜똥(잉크가 뭉친 것)이 나와요. 그러면 종이에 볼펜심을 문대 닦죠. 이런 식으로 작업 중에 얻은 볼펜똥을 모은 것은 「노력」이란 작품이 됐어요.”

오래 그리지 않으면 새까만 볼펜똥으로 화폭을 가득 채우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한 줄 댓글로 얻은 용기가 그를 움직였고 엄연한 예술가로 성장시켰다. 이제는 자신의 그림과 글귀로 독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조씨. 글과 그림을 통한 소통의 힘을 믿는 한, 시를 쓰지 않고 ‘그리는’ 그의 작업은 우리 마음의 여백을 아름답게 채색해갈 것이다.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사진: 안은나 기자 insatiabl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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