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수 김하예린(무용과 석사 3학기)씨가 표현하는 ‘첫 마음(Virgin Heart)’은 시리고 아련하다. 거대한 콩쿠르 무대에서 리듬에 맞춰 발레 스텝을 구사하던 그는 이윽고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한꺼번에 풀어내듯 숨쉬기 시작했다. 발레 호흡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무용의 호흡이었다.

8월26일(수) 열린 일본 ‘츠쿠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그는 창작 무용 ‘첫마음’으로 668명 중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베를린 댄스올림픽에서 동상을 받고, 올해 6월 뉴욕 국제발레콩쿠르에서도 파이널 리스트에 올랐던 그지만, 국제대회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듯했죠.”

대학원에서 학업과 병행하며 준비한 콩쿠르였기에 수상은 더욱 값지다. “국제콩쿠르 준비자는 학업을 중단하고 콩쿠르 준비에만 매진해요. 하지만 대학원 졸업을 앞둔 저로선 학업을 포기할 수 없었죠.” 공부와 콩쿠르 둘 다 해내기로 마음 먹은 그는 낮에는 학업에, 밤에는 연습에 매진했다. 남보다 연습시간이 짧아 몇 배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급한 마음에 무리한 연습을 하다 무릎 뼈 부상을 입기도 했다. 병원을 찾은 그에게 의사는 춤을 추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연습한 것이 3개월이었다. “무용수는 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다들 아픔을 감수하면서 추는 걸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가 무너질 때마다 힘을 준 것은 지도교수인 신은경 교수(무용과)였다. 그는 특히 츠쿠바 콩쿠르에 참가하기 전날 신 교수와의 마지막 레슨을 잊을 수 없다. “대회 전날 교수님이 질문하셨죠. 자신이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지, 무엇을 표현하려고 이 춤을 추는 것인지 돌아보라고요.”

동작 연습에만 치중해 온 그에게 신 교수의 질문은 새로운 깨달음을 줬다.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첫느낌’은 달콤한 첫사랑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무슨 일이든지 처음은 순수한 만큼 미숙해 실패나 좌절을 겪게 돼죠. 그래서 아련하고요.” 이 때문에 그의 ‘첫느낌’은 설레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고도의 몰입과 표현력, 그리고 ‘한의 정서’가 결합된 김씨의 무대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러시아의 알렉세이 듀비닌 심사위원은 그의 공연에 “흠잡을 곳이 없다”며 망설임 없이 만점을 줬다. 감정표현 또한 일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베를린, 뉴욕에 이어 일본 콩쿠르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김씨는 해외 유명 무용단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을 정도로 유망한 무용수가 됐다. 그러나 그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원 조교로 일하는 중에도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신 지도교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해요.”

김씨의 꿈은 무용가, 안무가이자 무용 지도자다. 그는 지도자의 꿈을 위해 본교 학부 재학 시절 교직이수를 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또 10월에 열리는 젊은 안무가들의 축제 뉴 제너레이션 페스티발(New Generation Festival)에도 참가해 자신의 안무를 선보인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보면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해요. 발레리나 강수진씨처럼, 안무가 메튜 본처럼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갖고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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