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교양과목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물리학은 어떤 학문인가 질문을 던졌더니 힘, 에너지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리학자가 누구인가 물어보니 아인슈타인과 뉴턴을 들었다.
어떤 업적을 남겼냐고 되물었더니 상대론과 만유인력인데, 상대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만유인력은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솔직한 대답이었지만, 대학생으로서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얕은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은 각 전공분야의 전문교육 뿐 만 아니라, 서로 다른 학문분야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며 꿰뚫는 통찰을 갖게 하는 교양교육을 대학에서 이수한다.
교양교육은 대학교육에서 전문교육 못지않게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데, 그 까닭은 이를 통해서 인간의 사유가 풍부해지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 마련되며, 세계 속의 자아에 대한 성숙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교양교과목을 선택할 때 학생들이 자연과학 분야를 낯설어하며 수강을 어려워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물리학은 마치 외계로부터 날아와서 갑자기 지구 상공에 나타난  비행접시와 같이 동떨어진 학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설명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친숙한 언어와는 다른 어려운 비밀기호로 되어 있고, 노력에 비해 얻을 것이 별로 없는 학문으로 여겨진다.그 결과 자연과학은 대학생으로 교양을 갖추기에는 없어도 되는 분야로 결론이 내려지곤 한다.

하지만 현대인간은 과학기술로 엮여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의 생활방식은 불과 5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양상을 띠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전자레인지로 빵을 데워 식사를 하고, 교통카드를 이용하여 요금을 지불한 지하철을 타고, 엠피스리로 음악을 듣고, 도서관에서는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찾으며, 핸드폰으로 친구와 통화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대학생의 일상생활이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기의 공급, 반도체기술로 가능해진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작과 대용량 정보의 저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방에 널려 있는 전자기파과 같은 기술이 없이는 이러한 생활방식이 불가능하다.

이와 같이 일상생활의 내부에 속속들이 스며있는 기술은 자연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이 인간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현대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교양이다.
자연과학이 대학의 교양교육에서 멀어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학 공동체 차원의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21세기에도 끊임없이 발전할 과학기술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젊은 대학생들의 경우 자연과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은 예술, 문학 등과 같이 인간 인식의 변방을 확대해가는 정신활동이다. 즉 정형화된 규범으로서 인간의 사고를 구속하는 틀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더듬어 가며 통일적인 이해를 이루어가는 학문이다.

젊은 대학생의 경우,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 생각하는 갈대로서의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 행위에는 어떤 미적인 아름다움이 있는지 등과 같은 질문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주어진 자연현상에는 그 내면에 어떤 통일성이 있는지, 아인슈타인과 뉴턴이 얻은 시간과 공간, 물질에 대한 답은 옳은 것인지 등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던져야 한다.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불후의 작품 “율리시즈”에서 “한 예술작품에 대한 가장 뛰어난 질문은 얼마나 깊은 삶으로부터 그 작품이 튀어 나오는가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그대로 자연과학에도 적용되어 주옥같이 빛나는 현대의 자연과학은 인간 인내의 극한에 도전하는 피와 땀을 통해 얻어진 창의성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교양으로서의 자연과학에 용기를 내어 도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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