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창의. 문제 해결 능력.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더욱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이 역량을 키우기 위해 일차적으로 요구 되는 조건은 ‘공격성’이다. 공격적인 힘을 내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이 남성 호르몬을 잘 활성화시키는 사람이 시대의 인재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한된 시간 동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나태해지기 쉬운 자기 자신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회적으로도 공격적인 성향이 장려되고 그러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한국 사회는 마치 테스토스테론 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 같다. ‘이기는’, ‘독종’, ‘모질게’ 같은 말들이 베스트셀러 책 제목에 많이 나타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유순함과 우유부단함의 원천인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estrogen)’. 이 호르몬 수치가 높은 여성일수록 남성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을수록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다. 애정에 대한 욕구와 성취 욕구를 동시에 지닌 여성들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통 남성보다 두 세배 많은 에스트로겐을 생산하는 여성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건전한 공격성을 갖추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반면, 이성에게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에스트로겐을 활성화하는 쪽이 낫다.

에스트로겐형 인간과 테스토스테론형 인간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여성들 사이에서 테스토스테론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격적이지 않음을 마치 무능함인 것처럼 여기거나 타인을 향해 자주 공격성을 분출하는 것부터 자기 자신을 공격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는 데 이르기까지 테스토스테론 과다 분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공격성으로 똘똘 뭉친 여전사들이 출현하는 동시에 완벽한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테스토스테론 결핍 여성들도 등장했다. 사회적 성취, 애정 욕구의 만족 그 어느 쪽도 쉽지 않은 판국에 방향성을 잃고 기형적으로 활성화되는 테스토스테론은 경제용어를 이용해 비유하자면 호르몬 버블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나이 이십 대. 관용과 탁월한 유연함을 지니기엔 아직 덜 살았다. 그러나 목표와 목적의 차이를 인식하고 구체적인 목표 위에 장기적인 목적을 하나 더 마련하는 여유쯤은 있어도 좋을 나이다. 목적은 궁극적인 차원의 목표이자 살면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내 경우 그것은 상생과 관용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목적 의식 하나를 더 가짐으로써 나도 테스토스테론 과다 분비 현상을 조금은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목적 의식을 가질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목적이 무엇이 되느냐에 따라 공격성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테스토스테론을 마음껏 분출해도 용인될 수 있는 시기다. 그러나 사회 분위기에 떠밀려 무작정 스스로를 공격형 인간으로 몰아붙인다면 시간이 지난 뒤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지금의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방어기제로 공격성을 택하기 보다는 궁극의 목적으로 삼은 나의 가치관, 인생관을 좀 더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말하는 ‘현명하다’는 말은 눈치가 빠르고 똑똑함을 뜻하는 ‘영리함’과 총명하고 셈이 정확함을 말하는 ‘똑똑함‘과는 다르다. ‘영리함’과 ‘똑똑함’이 지나치면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의미인 ‘교활함’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일생을 사는 동안 ‘영리함’은 기본, ‘똑똑함’은 옵션, ‘교활함’이 극복요인이라면 ‘현명함’은 목적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테스토스테론을 발휘해 목표를 성취한 경험만으로는 슬기롭고 사리에 밝은,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여성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적당한 공격성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현명한 여성들이 가질 수 있는 장점마저 이화여대에서, 사회 속에서 희박해질 것 같아 두렵다. 이 시대가 공격성을 강요할수록 더 뚝심 있게 상생과 관용의 호르몬을 지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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