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은 서얼 차별 폐지를 주장했다. 조선시대에 정부인이 아닌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관직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본교에도 ‘서얼’이 있다. 본교 학부를 졸업하지 않은 이 서얼들은 미움까지 받는다. 얼마 전 본교 평생교육원은 “이화여대의 동문이 될 절호의 기회”라며 총장명의의 학사학위 과정을 광고해 학부생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총장명의 학사학위 과정이 ‘학벌세탁이자 학위남발’이라고 말했다.

학벌세탁이라는 말은 평생교육원생들이 이기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본교의 학위를 남용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평생교육원에서 수여하는 총장명의 학위는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학점은행제’의 일환이라는 사실, 그리고 본교처럼 학점은행제와 평생교육원을 운영 중인 영미권 유수대학은 우리보다 20배, 30배 더 많은 학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하버드대는 학업 연장 학교(Extension School)를 개설해 26개 분야에서 학사 학위를, 20여개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200년 전부터 평생교육원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한 영국 옥스포드대는 1990년에 평생교육원을 아예 학부로 인정했다. 옥스포드대의 ‘평생교육 학부’라 할 수 있는 해리스 맨체스터 학부(Harris Menchaster college)의 구성원은 16세에 고등학교를 그만뒀다가 입학한 학생부터 다양한 분야의 직업인, 빈 둥지 증후군을 극복하려는 주부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옥스포드대의 다른 학부 학생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뿐 아니라 졸업 후 옥스포드대 동문이 된다.

영미권의 모든 평생교육원이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명문대인 스탠포드대는 학점은행제에서 인정하는 과목을 개설하긴 하나,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다. 위스콘신대도 온라인 과정을 제외하고는 평생교육원으로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미국 대학도 쉬이 도입하지 못하는 학위 프로그램을 본교 평생교육원이 도입한 것은 시기상조인지도 모른다. 총장명의 학사학위에 대한 법의 시행령이 만들어진 지는 1년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그 법이 실제로 시행된 것은 올해 9월1일(화)부터였다. 본교 평생교육원은 법이 시행되기 시작한 직후 총장명의 학사학위 과정을 개설했다. 한국에서는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 학위과정은 그래서 더욱 오해를 일으키기 쉬웠다.

어쨌든 평생교육원의 총장명의 학위와 학부생의 학위는 사회적 평판은 다르겠지만 법적으로 같은 것이 사실이며, 분야도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본교 외에도 앞으로 더 많은 학교가 총장명의 학사학위를 수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평생교육법’이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점은행제의 목적은 더 많은 시민에게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뿌리 깊은 학벌주의를 없애는 것이다. 이 제도 앞에 ‘학부생만으로 똘똘 뭉친 동문’은 더이상 무력한 것이다.

연세대 주인기 교수(경영학과)는 6월20일(토) 중앙일보 칼럼에서 “세계 50위권 대학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대학들은 전통적으로 지역사회 봉사를 강조한다”며 “사랑받지 못하는 대학은 결코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립 명문으로 꼽히며 17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본교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업적이 뛰어나도 사회에서 사랑 받지 못하면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의 의무가 무엇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학벌주의가 팽배한 한국에서 대학은 재학생의 특권 유지를 위한 장소일 수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배움을 제공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곳일 수도 있다. 정의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서얼 폐지를 주장했던 연암의 말을 다시 상기해보자. 서얼이 차별 받은 까닭은 양반계급의 이기심과 세력의 전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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