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보통 일을 ‘하는’ 사람은 “즐겁”거나 “괴롭”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일에서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기 위해 알랭 드 보통은 타인의 노동 현장을 그리고, 노래하며,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제3자로 변신한다.

지금까지 저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1993),「여행의 기술」(2002), 「불안」(2004),「행복의 건축」(2006) 등에서 알랭 드 보통은 일상을 문학, 철학, 미학적으로 해석하는 ‘철학자’였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일의 기쁨과 슬픔」(2009)에서 그는 로켓연구, 직업 상담, 회계 등 9가지 일이 펼쳐지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끈질긴 관찰자다. 그는 생선의 원산지를 찾아 몰디브의 어선에 올라타고, 로켓 제작 과정과 발사 현장에 참관한다. 앞뒤가 꽉 막힌 회계사 사장을 인터뷰하고, 직업상담가를 좇아 사방팔방 돌아다닌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선 작가 특유의 지적 성찰이나 냉소적 유머를 찾아보기 힘들다. 각종 직업의 노동현장을 묘사하고, 사진으로 찍어대는 그의 모습은 마치 현장을 뛰어다니는 기자같다. 사색이라 봤자 ‘사건 기록’ 후 가벼운 사유나 감상을 덧붙인 것이 전부다.

부둣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쓰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18세기 도시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그린 일의 세계에는 과장된 아름다움도, 과도한 의미부여도 없다. 각각의 일들이 지닌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끊임없이 교차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가 묘사하는 일과 그 결과물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뿜어낸다. 운송차량과 비행기만이 오가는 물류 허브는 차갑지만 완벽하고, 아름답다. 영국 상점에 진열된 캘리포니아산 딸기에는 신선함을 유지하려는 운송업자의 조바심이 묻어난다. 초콜릿 과자의 포장지는 조잡하지만, 사업가의 치열한 생존전략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쇳덩어리로 이뤄진 송전탑과 거미줄 같은 전선은 꽃이나 바다와 다른 의미에서 시(詩)처럼 곱다. 로켓의 과학적 성취는 물질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이야기는 주로 묘사를 통해 이어지지만, 각 직업에 대한 저자의 소회도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그 중 회계사들에 대한 명상은 특히 이 책의 백미다. “사무실에서 하루를 시작하면 풀잎의 이슬이 증발하듯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린다. 이제 인생은 신비하거나, 슬프거나, 괴롭거나, 감동적이거나, 혼란스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현실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실제적인 무대일 뿐이다.”

‘직업으로서의’ 화가는 오히려 회계사보다 낭만적이지 못하다. 화가의 관찰력과 드로잉 기술은 경이롭지만, 그림을 팔지 못하는 화가는 쓸쓸하고 고단한 생활자에 불과하다. 회계사를 우아하게 그리던 알랭 드 보통은 화가의 고독한 넋두리 앞에선 입을 다문다. 글 속에는 화가의 삶에 관한 무거운 진실만이 담긴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중 알랭 드 보통이 언급한 직업군에서 빗겨갈 사람은 많지 않다. 책 속 회계사들의 이야기는 사무직 종사자들의 전형이며, 화가의 고뇌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공통적인 고민거리다. 직업상담가와 송전탑 기술자와 로켓 연구자들의 모습은 우리 중 누군가가 겪게 될 미래이기도 하다. 그는 거의 모든 직업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아한 회계사, 기술자만큼이나 정교한 기술을 지닌 화가, 차가운 이성을 단숨에 녹여버린 직업상담가의 따뜻함, 문학적 감상을 낳는 과학의 신비…. 이 장편의 서사(敍事)를 통해 알랭 드 보통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어느 직업이든 ‘아름다우리만치’ 의미 있다는 사실이다.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