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hijab), 부르카(burka), 부르키니(burqini)는 무슬림 여성들이 착용하는 머리 스카프, 전신을 감싸는 의상, 수영복을 말한다. 21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히잡, 부르카 등 이슬람 전통 복장 착용 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4년 공립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시행되어 왔으며, 이후 터키와 네덜란드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제정되었다. 지난 여름에는 프랑스의 한 수영장에서 머리부터 발목까지 감싸는 이슬람식 수영복인 부르키니를 입은 여성이 입장을 제지당하면서 다시 논쟁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금지를 둘러싼 논란은 세 가지 쟁점에서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는 정교(政敎)분리에 관한 쟁점이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전통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 정교분리제도가 도입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에 반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인구의 95%이상이 무슬림인 터키에서도 히잡 금지를 정교분리를 상징하는 규정으로 받아들여 왔다. 히잡 착용금지가 종교 차별이라는 무슬림 진영의 비판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유대교 남성들이 쓰는 모자(kippah)와 대형 십자가 등 다른 종교적 상징물도 금지하고 있음을 들어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세속주의(secularism)원칙이 종교적 차이에 대한 존중임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여성의 지위와 권리에 관한 쟁점이다. 페미니스트를 포함하여 많은 서구인들은 히잡이나 부르카를 여성억압의 상징으로 비판해 왔다. 즉 여성의 순결과 몸에 대한 가부장적 관념, 엄격한 성역할 분리 등을 여성 차별과 종교적 구속에 대한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히잡 착용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히잡이나 부르카가 남성의 성적 시선으로 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물로 취급하기보다 존중하는 이슬람의 전통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무슬림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하여 히잡 금지법안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라는 맥락에서 여성을 행위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문화적 차이와 다양성에 관한 쟁점이다. 무슬림들은 히잡 착용 금지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라고 비판하면서, 무슬림 여성이 외출할 때 히잡을 두르는 것은 종교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전통이자 문화라고 항변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지하철에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에 대해 궁금해 하는 어린 자녀에게 “외계인”이라고 대답한 어머니에 대한 신문기사가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수영장 내의 부르키니 착용 금지의 본질이 ‘종교가 아니라 위생’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유럽 국가들에서 세속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금지법을 제정·시행하는 것은 글로벌 사회의 다문화적 공존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히잡 착용금지 입법에 대한 논란은 얼핏 찬성과 반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이분법적 구도로 보이지만 이러한 논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21세기 민주주의의 과제에 관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성찰되고 진보(해야만)하는 가치(value)이다.

유럽의 정교분리원칙은 중세 봉건사회에서 민주적 시민사회로 가는 토대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페미니즘은 이러한 ‘민주주의’가 여성을 배제하였음을 지적하고, 여성을 2등 시민이 아니라 온전한 ‘시민’의 지위에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진일보시켰다.

히잡 착용금지를 둘러싼 논란은 민주주의의 실천이 종교와 젠더뿐 아니라 인종과 민족에 관한 사유를 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것은 21세기 글로벌 사회가 요구하는 민주주의 발전의 과제이며, 따라서 히잡 논란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또 한 번의 도전적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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