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맞이하면서 이것저것 준비할 일이 많아졌다. 새롭게 시작되는 수업과 새롭게 시작되는 여러 가지 일들, 희망찬 마음과 함께 여러 가지 계획이 학생수첩을 가득 채운다. 바쁘고 할 일이 많다는 건 왠지 뿌듯한 일이다. 열심히 노력하면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점과 오늘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기분은 거부하기 힘든 일상의 즐거움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 중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우리는 거의 비슷한 하루하루를 맞이하면서 살아간다. 오늘은 어제와 분명히 다르지만 그 ‘오늘’이 지나간 과거가 되었을 때 회상해보면 ‘어제’와 마찬가지인 과거가 되어버린다. 특별히 기억되는 하루가 있기보다는 비슷비슷한 하루, 하루가 우리 곁을 보이지 않게 스쳐지나간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 즉, 조용한 가운데서 사유가 이루어진다면 일상 속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새로움은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젊음의 한창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은 늘 바쁘고, 마음 한 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무언가 준비해야한다는 조급증이 종종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사실,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스스로 생각해도 무언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면 불안해지기도 하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결국 비어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깊이 있는 사유의 시간마저 허락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고민만이 이롭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진정한 실용이란, 정신을 포기하면서까지 손에 잡히는, 확실한 무언가에만 집착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신적 성숙 역시 인생에서 소중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자기와 자기 자신’간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또, 플라톤은 자기와의 대화 속에서 사유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았는데, 이 때, 혼자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음을 의미한다.

사유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 중에서 가장 고독하지만 상대나 동료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상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생산적인 시간활용이라는 범주에 사유의 시간, 정적이 흐르는 시간도 포함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시간에 사유가 이루어질 수 있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더 가치 있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조용한 가운데 사유의 즐거움을 누린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의 새로움과 함께 자기 성장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벼운 주제부터 근원적이고 다소 철학적 질문까지 사유의 폭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넓힐 수 있다. 메말라가는 이 시대에서 정신의 가치를 잃지 않는 방법은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양한 생각은 익숙한 일상 속에서 깨달음의 찰나를 우리에게 선사해 줄 것이다. 그 찰나의 새로움은 일상에서 맛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골칫거리가 아니라 하나의 소소한 오락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올해도 벌써 몇 개월 남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새로움을 맛보기에는 전혀 늦지 않았다.
바쁜 가운데서도 찰나의 행복을 붙잡는다면, 이 가을 역시 봄 못지않은 새로움으로 가득 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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