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시민’의 역할
‘진정한 시민’의 역할
  • 이영신 편집국장
  • 승인 2009.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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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신 편집국장
요즘 대학생들의 스펙 쌓기와 맞물려 지방이나 해외 봉사활동 모집을 쉽게 볼 수 있다. 취지는 좋지만 봉사에 드는 비용과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 실질적으로 봉사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따져보면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봉사라는 생각이 든다. 봉사란 장기적으로 신뢰와 유대관계 속에서 이뤄질 때 더 높은 효과를 가져온다.

학보사 기자로서 본교의 사회복지관 자원봉사를 동행취재 한 적이 있었다. 이화 옆 아현동에는 수많은 쪽방과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낡은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하루 종일 누워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봉사자가 하루에 한 개씩 배달해주는 도시락으로 하루식사를 해결한다. 유일한 친구는 도시락을배달하는 자원봉사자뿐이었다. 함께 동행한 자원봉사자는 대학생 봉사자가 적다고 아쉬워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는데, 멀리 해외나 지방으로 가는 봉사에 사람이 몰리는 현실이 아이러니했다.

사회복지사는 “최하위 빈곤층들은 어느 정도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장하는 테두리를 조금 벗어나는  차상위 계층들은 빈곤층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턱을 낮춘다고 해도 제2, 제3의 차상위 계층이 생겨날 것이기에 실질적 해결방안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국가와 법은 최소한의 방패막이일 뿐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시민사회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직접 차상위 계층 사람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장애인 부부였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을 구하고 싶지만 장애인인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부부의 그달의 수입은 0원 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었다. 몇 년 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몇마지기 땅 때문이었다. 그 땅은 부부의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었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땅도 아니었다. 부모가 유산으로 준 땅 때문에 원래 기초생활수급자였던 부부는 수급자에서 제외됐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부부가 기초수급대상의 법에 대해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아주머니는 유산을 물려받으면 수급자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땅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보에서 소외돼 있다는 이유로 법이 정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분들을 위해 당장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라는 사실에 좌절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빈곤함을 증명할 16가지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빈곤층에게 복잡한 제도를 일일이 옆에서 설명해주고 도와줄 사회 복지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들에게 법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그러나 빈곤 계층에게 정치라는 단어는 사치이다.

누구도 그들의 한 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정책을 따져보고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당장 가난한 사람들의 배고픔과 빈곤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계층을 위해 발벗고 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의 권리는 누가 대변할 것인가.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 여자대학을 다닌다는 것이 그만한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지식인은 자기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만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빈곤층을 위한 대책이 나에게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권리를 앗아가려는 기득권층에 반대표를 던지자. 내가 상류층이더라도 빈곤층을 위해 나에게 세금을 더 걷자고 주장하는 소수정당을 지지해보자.

우리는 공공성을 지키면서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질 줄 아는 연대와 헌신의 존재, ‘진정한 시민’이 아니던가.

이영신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