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김은남 기자(중문·90년 졸).
“시사IN이 6개월을 못 넘길 거라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있었어. 그런데 벌써 2주년이 돼가네. 기적이지.”
시사저널 파업사태가 끝난 지 2년이 됐지만, 그때를 회상하는 시사IN 김은남 기자(중문·90년 졸)의 마음은 아직도 뜨겁다. 올해로 경력 17년차 기자인 그는 시사저널 입사 때부터 사회부에서 시작해 이제 굵직한 기획기사를  써내는 ‘여장부’가 됐다.

그런 그도 경력 15년차 시절, 2006년 6월 시사저널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는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난 ‘기자질 지겹다’는 소리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어.” 시사저널 사태는 시사저널에 게재되려던  삼성 관련 기사를 사장이 무단 삭제하면서 시작됐다. “그때 내가 경제팀장이었어. 삭제된 기사는 후배기자가 쓴 것이었고. 사장이 삼성 기사가 들어가는 것을 알고는, 국장과 담당기자를 불러 기사를 빼달라고 부탁하더라고.” 결과는 물론 ‘둘 다 한사코 거절’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하고나서 겨우 기사를 마감했는데, 인쇄소에 보낸 사이 기사가 사라져버린 거야.”

편집국장은 항의의 뜻으로 사표를 냈다. 뜻밖에도 사표는 바로 수리됐고, 사장이 편집회의를 소집하고 나섰다. 시사저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사장과의 편집회의를 거부한 기자들은 하나 둘 ‘정직’ 처분을 받았다. 취재총괄팀장은 무기 정직 및 출근금지를, 사장의 의자를 사장실 밖으로 내놓은 후배기자들은 3개월 정직을 당했다. 25명중 17명이 크고 작은 징계를 받았다. “옆자리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때가 제일 힘들었어. 차라리 파업할 땐 편하더라고. 적어도 함께 있을 수 있으니.” 

기자들의 항거는 노조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파업은 쉽사리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기자들이 노조 결성 절차를 밟는 동안 시사저널 측은 ‘편집위원’을 미리 채용해두고,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제작에 투입했다. 시사저널 노조들은 길거리에 앉아 허탈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격려가 있어서였다. “파업 막바지에 노조사무국장을 맡아 단식투쟁할 땐 누군가 꼬깃꼬깃한 5만원을 쥐어주고 가더라고. 그때 눈물이 쏟아졌어. 나는 지난날 저 사람들과 얼마나 공감하며 기사를 썼나 싶어서….” ‘LA타임즈’ 특파원을 역임한 지정남씨는 파업 기자들에게 ‘펜이 돈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달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부담도 됐지만, 그 말 덕에 또 힘을 낼 수 있었어. 내가 왜 투쟁하는지 되새길 수 있었고, 그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투쟁이 명예롭게 느껴지기도 했거든.”

그러나 오랜 투쟁에도 시사저널은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김은남 기자를 비롯한 파업기자들은 결국 시사저널과의 결별을 선언해야 했다. 기자회견에서 “시사저널과의 인연을 끊고 독립언론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는 선언문을 낭독하며 그들은 눈물을 떨궜다. 8일간의 단식으로 몸무게가 4kg나 빠진 김은남 기자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시사저널과의 이별 날짜는 2007년 6월26일. 그리고 세 달 후인 9월15일, 그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시사IN이 태어났다.

다시 펜을 잡은 기자들은 혼신을 다해 시사IN의 명맥을 이어갔다. 정기구독자 수가 빠르게 늘었고, 6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던 시사IN은 어느덧 2주년을 맞게 됐다.
시사IN의 캐치프레이즈는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시사주간지’로 정해졌다. “앞으로 살아남을지, 망할지도 모르는 주간지 창간에 거액을 지원한 사람들, 구독해준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어. 우리에게 기자정신이라든가 정직함을 기대한다는 거야. 최소한 사리에 눈이 멀어 기사를 바꿔치기하지는 않을 거란 믿음 같은 것 말야.”

그의 투쟁은 이제 ‘자본권력과 언론 자유의 대립’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우리가 시사IN을 창간하기까지의 과정은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해. 결국 ‘진실 추구’라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살아남는다는 걸 보여준 거지.”

일주일에 세 편의 심층기사를 써내면서도 김은남 기자는 이제 ‘기자 일이 지겹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왜 기자를 하려는가, 그리고 왜 기자를 하려고 했던가.  이 질문만큼은 잊지 말아야 해. 기자란 직업, 내겐 ‘천직’인 것 같아.”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사진: 고민성 기자 minsgo@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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