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랜튼 선생 서거 100주년 특별전

이화학당 학생들과 스크랜튼 선생(우측 마지막 줄).
“오늘 이 땅에 자유, 사랑, 평화의 여성교육이 열매 맺으니, 이는 스크랜튼 선생이 이화동산에 씨 뿌렸기 때문이다.”
이화역사관은 메리 F. 스크랜튼 선생 서거 100주년 특별전 ‘이화의 설립자, 스크랜튼을 만나다’를 18일(월)부터 1년간 이화역사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메리F. 스크랜튼은 본교의 전신이자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한 선교사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이화학당 설립 시절부터, 이화학당장 퇴임 후 전국적 전도 사업을 펼쳤던 때까지 사진자료로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스크랜튼 선생의 업적별로 네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제1주제는 ‘미국에서 건너온 최초의 여선교사’다. 1883년 9월, 미국 오하이오주 레베나시에 위치한 레베나 교회(Revenna Church)에서 미국감리교 최초로 한국 여성을 위한 헌금이 진행됐다. 이듬해 10월, 스크랜튼 선생이 한국 파견 첫 여선교사로 지명되면서 작성한 선교서약서, 서울 정동에 위치한 그의 사택의 오래된 흑백사진이 관람객을 맞는다.

1886년 완공된 이화학당의 한옥교사와 당시의 학풍은 제2주제 ‘여성교육의 시작, 이화학당’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화학당의 초기 학생이었던 옥남, 자근귀동, 주간난 등과 교사였던 벵겔(Margaret Bengel), 페인(Josephine O. Paine) 등의 사진이 곱게 빛바랬다. 학생들이 소풍을 가려고 모여있는 사진 속 풍경은 현재의 본교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제3주제의 제목은 ‘부녀자들을 위한 진료소, 보구여관’이다. 1887년 개원한 ‘보구여관’은 한국 최초의 여성전용병원이자 현재 본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전신이다. 오래된 사진 속,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의사와 간호사들은 갓 태어난 아기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화학당 졸업생이자 한국 최초의 여의사인 박에스더가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제4주제 ‘열정과 헌신으로 임한 전도사업’에서는 스크랜튼 선생이 1890년 이화학당 당장직 퇴임 후 약 10년간 펼친 전국적 전도사업 풍경을 볼 수 있다. 서울부터 원산, 평양까지 그가 세운 매일학교, 주일학교, 소학교만도 여러 개다. 1909년 10월8일,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 그는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혔다. 

전시회를 관람한 이수진(법학·07)씨는 “스크랜튼, 나아가 이화의 역사를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던 전시”라며 “특히 그의 일생을 시대별로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평일 오전9시30분∼오후4시30분, 토요일 오전9시30분∼오후12시 이화역사관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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