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업 교수의 어원인문학 교실

70,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남자들은 빡빡머리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발소에 가서 “2부로 밀어 주세요”라고 하면 이발사는 가위로 머리를 대충 친 다음, 바로 바리깡을 꺼내 들었다. 학창시절 친구들 중에는 자기 딴에는 멋을 부려보겠다고 머리를 학교에서 허용한 길이보다 길게 기른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러다 악명 높은 학생주임에게 걸리는 날이면 머리 한 가운데를 이 바리깡이 무자비하게 지나가기도 하였다. 대학에 진학하여 낭만에 젖을라치면 국가의 부름을 받고 그 때 또 한 번 바리깡 신세(?)를 졌다.
이렇듯 한국 남자들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었던 바리깡은 본래 프랑스의 한 회사명이었다.

『外來語辭典』(1987:996, 角川社)에 의하면, 1883년 프랑스 주재 일본 외교관 나가타 카이타로가 프랑스 회사 ‘바리깡 에 마르’(Barriquand et Marre)에서 만든 이발기를 일본에 들여왔다. 일본어로는 ‘バリカン’이라고 한다. 2년 뒤인 1885년 오사카 한 공장에서 이 이발기는 제조되기 시작하였고, 그 이발기가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좌우로 움직이는 가동날과 고정되어 있는 고정날, 그리고 가위처럼 교차되는 손잡이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동날이 고정날에 대해 왕복운동을 하여 많은 머리카락을 동시에 절단할 수 있다.

한편, 바리깡의 철자를 두고 많은 이견이 있는데, 바리깡은 Barriquand이라고 쓴다. 바리깡이나 마르는 모두 기계제작업자들이었던 같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두 사람은 정밀기계 제조회사를 차려 이발 기계를 제작하였으며, 나중에는 비행기 내연기관까지 개발하였다. 이들이 개발한 내연기관 덕분으로 미국의 라이트 형제 중 한 사람인 윌버 라이트는 1906년 프랑스에서 그의 기록을 갱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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