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랜튼 여사의 정신, 내적 영역에서 실천해야
스크랜튼 여사의 정신, 내적 영역에서 실천해야
  • 이대학보
  • 승인 2009.0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교의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Mary Fletcher Scranton, 1832~1909) 여사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을 맞았다.

스크랜튼 여사는 1886년 서울 정동의 자택에서 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해 11월에는 해외여선교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정동 부지에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이화학당 ‘한옥교사’를 신축했다. 1887년 2월에는 고종임금에게 ‘이화학당’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이화는 123년이 지난 현재, ‘국제화’·‘연구 능력’ 부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선일보와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가 공동 실시한 ‘2009 아시아 대학 평가’에 따르면, 본교는 ‘외국인 학생 비율’ 국내 1위, ‘외국으로 나간 본교 교환학생 비율’ 국내 1위, ‘본교로 온 교환학생 비율’ 국내 5위를 차지했다. 합산 점수로는 국내 전체 대학(KAIST, 포스텍 포함) 중 6위(아시아 42위)였다.

본교는‘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 사업’ 에서도 9개 사업단이 선정되는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또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이 올해 6월 발표한 ‘대학별 SCI 논문 질적 평가 순위’에서 카이스트·연세대에 이어 3위를 차지해 양질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수진도 국제화되고 있다. '이화학술원'을 설립해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 제인 구달 박사,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 세포 연구의 대가인 이서구 교수, 2007년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최진호 교수, 동물행동학으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을 초빙했다.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된 이화가 이토록 국제적인 사학이 된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우리는 고아, 가난한 학생을 위했던 스크랜튼 정신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이화가 자리를 잡아갈 1890년 무렵에도 스크랜튼 여사는 선교 사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했다. 스크랜튼 여사는 아현, 동대문, 상동에 병원을 설립했고 일생을 봉사하다가 한국 땅에 묻혔다.

스크랜튼 여사의 삶으로 세워진 본교가 이제 실천해야 할 가치는 이러한 사랑이다. 불우한 여성을 교육하기 위한 봉사는 스크랜튼 여사가 평생을 바쳐 한 일이다. 높은 등록금, 미비한 장학제도 등은 스크랜튼 정신과 맞지 않는다.

외적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만큼, 이제는 내적 영역에서 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