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경(정외·06)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의 중심부는 듀퐁 써클(Dupont Circle) 주변이다. 서울로 치자면 시청 혹은 광화문 일대쯤 된다. 국회의사당, 백악관까지도 금방이고 역 주변에는 각국 대사관, 세계적인 연구소, 국제기구들이 밀집해 있다. 그만큼 세계 곳곳에서 부푼 가슴을 안고 모여든 유능한 인재들이 북적대는 지역이기도 하다. 워싱턴에서 석사 학위는 학사 학위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일단 그들의 학력 수준은 매우 높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수 대학 출신들이다. 인턴십이며 운동이며 못 하는 것 없이 팔망미인임은 물론이고, 완벽한 일 처리 능력에 열정까지 겸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은 파티에 참석하는 데 열심이다. 워싱턴에서의 성공 즉,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인맥을 깊고 넓게 다지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목적’하에 매일 밤 파티가 계속된다. 호텔이나 사교 클럽의 화려한 비공개 모임에서부터 서너 사람이 맥주잔을 부딪치는 것 모두가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식축구 게임을 보며 닭다리를 뜯으면서도 전공, 경력, 앞으로의 계획 등이 무엇인지 묻는다. 워싱턴의 이름 난 교수들, 학자들, 정치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히 주요한 화젯거리다. 클럽에 춤을 추러 가서도 명함을 교환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일상이 곧 사교요 정치다. 지나치게 전략적이지 않느냐는 불만도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세계 정치의 중심지답다는 증거이니 한편으로 재미있기도 하고,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기를 원하는 듀퐁써클의 젊은이들은 이를 불편해하기보다는 즐기는 편이다.

중요한 것은 파티에서의 행동에 따라 그들의 진짜 면면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파티에 모여든 젊은이들은 앞서 말했듯 하나같이 명민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더라도 빠지는 구석이 없다. 뛰어나지만 서로 비슷한 조건을 갖춘 상황 하에서 최후의 영예는 누구에게로 돌아가는 것일까? 진정한 글로벌 리더로서의 역량을 갖춘 사람은 누구인가? 최종 담판은 다름 아닌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내려진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쿠키 한 조각이라도 남을 먼저 챙겨주는 것. 북적대는 장소에서 스스럼없이 자리를 내어주고, 지치고 피곤하지만, 끝까지 웃어주는 것. 명함에 쓰인 상대방의 직책 혹은 소속보다는 그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 파티 이후에도 상대방을 떠올리고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그날 즐거웠다고 메일 한 통 보내주는 것.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지만 이런 배려를 할 줄 아는 자가 그 날 밤 파티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세상이 원하는 국제적 매너와 감각을 갖춘 글로벌 인재다.

워싱턴 젊은이들이 더 나은 커리어와 진로를 찾고자 파티를 여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꿈을 이루려면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토록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은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파티는 당장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붙잡고 내가 어떤 재주와 스펙을 가졌는지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 성공으로 가는 여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난관을 함께 극복해갈 수 있는 파트너, 당장이 아니라 십 년, 이십 년 후의 미래를 바라보고 서로를 믿어 줄 수 있는 조력자를 사귀는 것이 파티의 본 목적이다. 서로에게  수단이나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깊은 정신세계와 건전한 야망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귀는 자리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작은 배려가 우선이다. 이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고, 너와 나는 친구로 거듭난다.

파티에 처음 와 긴장한 친구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초면에도 선뜻 악수를 건넬 줄 알던 그는 지금 국무부에서 활약하고 있고, 파티에서 만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김치찌개를 끓여주던 그녀는 대표적인 국제기구 중 하나인 세계은행에서 죽어가는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 뛰고 있다. 글로벌 인재는 작고 사소한 배려로 타인을 감동시킬 줄 아는 사람이다.

구수경(정외·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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