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내내 자살, 유괴 주제로 한 영화 보며 집필해

제4회 이화글빛문학상 당선자 강윤정(국문·05)씨.
 “이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꼭 소설로 써보고 싶었어요.”
 동기들이 취업준비에 열을 올리던 4학년 겨울방학, 강윤정(국문·05)씨는 소설을 완성하려고 아침저녁으로 노트북과 씨름했다. 소설의 주제가 자살, 유괴, 용서였기에 유괴 영화는 모조리 봤고, 「자살 백과」라는 책도 읽었다. 다큐멘터리부터 소설까지, 이야기에 도움된다면 가리지 않았다.

이렇게 완성된 제4회 이화글빛문학상 당선작 「Andante, 안단테」는 강윤정씨가 온갖 자료로 한땀 한땀 수놓아 쓴 작품이다. 이화글빛문학상은 이화여대출판부와 이대학보사가 공동주최하는 장편소설 응모전이다. 당선작 「Andante, 안단테」는 “아동 살해와 자살카페라는 사회성 짙은 소재를 용서, 화해 같은 본질적인 문제로 탁월하게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아이를 유괴당하고 나서 자살을 결심한 아버지와 자살카페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촬영하는 영화감독지망생이 함께 도보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영화지망생 ‘모구열’에게 도보여행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이야기가 모구열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진행되는 이유는 20대인 강씨가 아이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씨는 “모구열의 카메라는 나의 시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모구열은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유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다 원망을 사기도 한다. 그런 장면은 언론의 무심한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자, 작가인 강씨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씨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모구열이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카메라가 아닌 ‘인간의 눈’을 통해 피해자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자살이나 유괴라는 주제는 언뜻 보면 강씨와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강씨가 대학시절에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새내기 시절, 친구문제로 고민하느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 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은 그가 이야기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떠난 외국여행에서는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국토 대장정을 하며 죽도록 고생한 기억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도보여행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됐다. 결국, 강씨가 대학시절 몸으로 겪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모여 소설로 태어났다.

그의 소설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모방범」이다. 소설이 자아뿐 아니라, 현실 사회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다룬 점이 인상 깊었다고. 연예인의 자살, 아동 유괴에 관련된 이슈들도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유괴살인마 유영철에게 희생당한 아이의 유가족에 대한 SBS 다큐멘터리 「용서, 그 먼 길 끝에 당신이 있습니까」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줬다. “한 가족은 유영철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다른 한 가족의 아버지는 용서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용서한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했죠. 전 그 다큐멘터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아버지가 유괴범을 용서하기까지의 복잡한 과정을 소설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의 작품에는 미숙한 점도 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의 비논리적 구성, 인물들의 정형성, 예측 가능한 결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소화해낸 점은 성과다. 강씨는 “장편을 써낸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이 상은 자신에게 주는 졸업 선물”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스토리텔링(디지털 콘텐츠 제작을 위한 이야기 창작기술)’을 공부하기로 했다. “요즘은 게임 스토리도 구상하고 있어요. 평소에 관심 뒀던 환상문학을 응용해 좀 더 대중적인 주제의 이야기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대학시절에는 누구나 고민을 한다. 강씨는 그 고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한 편의 소설로 엮어냈다.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고 볼 일이에요. 비록 만족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요.” 서로 관련 없는 듯한 시간들도 훗날 한 편의 소설처럼 멋진 인생으로 태어날 수 있다. ‘안단테’처럼 느리더라도.
 
박현주 기자 quikson@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