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본교 ㄱ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록을 제공할 것인지 고민했다. 온라인에서 강의록을 공유하거나 사고파는 학생들이 있어 강의록이 외부에 유출될까봐 우려됐기 때문이다. 종이에 인쇄해서 나눠주는 방식도 고려해봤지만, 돈이 드는데다 번거로웠다. ㄱ교수는 결국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본교 사이버 캠퍼스에 강의록을 올려주기로 했다. 일부 학생들이 교수의 허락없이 강의록을 온라인에 유통시켜 교수들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

△강의록 사고파는 학생들
일부 대학생들은 해피캠퍼스나 레포트월드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교수의 강의록을 사고판다. 이들은 교수의 저작권을 이용해 돈을 버는 셈이다. 대학생들이 리포트나 강의자료를 공유할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해피캠퍼스에서 ‘강의록’ 또는 ‘강의노트’라는 키워드로 자료를 검색하면 사이트가 생성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4백여 건의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작년에 올라온 강의록은 약 30건이다. 가격은 판매자가 정할 수 있는데 300원에서 3천원까지 분포돼있다. 자료를 올린 사람은 회원 등급에 따라 판매 수익의 40~60%를 갖는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 김소임 강사(사회학 전공)는 첫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사이버캠퍼스에 올려주는 강의록 파일은 출력 후 폐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수업 자료에는 그 주제에 대한 교수자의 오랜 고민이 포함돼 있고, 아직 발표하지 않은 독창적인 연구 결과나 주장들이 포함될 수도 있다”며 “교수자의 동의 없이 강의록을 유출하거나 사고파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위원회 상담실은 “학생이 교수의 강의록을 불특정다수와 공유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말했다.

△일부 강의록은 저작권자 불분명
모든 강의록에 저작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가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독자적으로 구성한 강의록이라면 창작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신의 창작부분이 없거나 단순히 여러 자료를 짜깁기 형식으로 모아 놓은 강의록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받는 저작물로 보기 어렵다. 이 경우 저작권은 교수가 참고한 자료의 원저작자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학생이 교수의 강의를 정리해 강의록을 만들었을 때는 저작권자를 판단하기 어렵다. 저작물위원회 상담실은 “강의 자체도 저작권법상 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학생이 교수의 강의를 서술어나 조사만 변경해 옮기는 경우라면 복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의 내용에 창작성을 더해 새롭게 기술한 경우라면 이차적 저작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의록 저작권 보호받기 어려워
교수들이 강의록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보호받기는 힘들다. 해피캠퍼스 김한승 기획운영팀장은 “본인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자료를 올리는 게 원칙이지만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며 “저작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사이트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이 저작권자임을 증명하면 바로 판매 중지 조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가 자신의 강의록이 어디에서 어떻게 거래, 공유되고 있는지 모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교수들은 학생들의 양심을 믿고 강의록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우민희(사회·06)씨는 “강의록이 온라인상에서 유포되고 있는 줄 몰랐다”며 “강의록을 함부로 공유하거나 사고파는 행위는 자제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 학기 ‘문화산업과 저작권’ 수업을 통해 저작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이상아(방영·06)씨는 “학생들이 강의록을 공유하고 싶다면 원저작자인 교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8월 생성된 영국의 강의록 공유 사이트 ‘GradeGuru’(gradeguru.com)는 저작권 보호에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 GradeGuru의 업로드 페이지에는 ‘스스로 창작한 자료만 올려주세요’라는 문구가 굵은 글씨로 쓰여 있다. GradeGuru 운영자는 “자료의 내용을 점검하는 조정자(moderator)를 둬 저작권 침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 객원기자 shindykkh@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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