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은 퇴임교수(심리학 전공).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기금으로 사용하면 좋잖아.”
제자를 향한 애정이 특별하기로 소문난 김재은 퇴임교수(심리학 전공)다. 지난 달 손수 그려 모은 펜화 160여 점을 전시해 얻은 수입금 전액을 본교 심리학과 동창회에 기부했다. 제자들이 필요한 곳에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동창회에 수입금을 내놓은 것이다. “그거 뭐 얼마나 된다고 그래. 의미있게 써야지 허허.” 퇴임한 지 13년이 흘렀지만 제자를 아끼는 그의 마음은 아직 이화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인터뷰 도중 전화벨이 울린다. “어이구 잘 지냈어? 얼굴 잊어버리기 전에 식사나 한번 하자고.” 전화 수화기 너머로 제자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제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 좋은 대학의 교수였고 좋은 제자를 두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그는 제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과 말쑥한 옷차림, 그리고 젊은이보다 더 젊은 시대감각을 갖춘 ‘열성 선생’이다. 자신의 삶에도 열정적이지만 특히 제자에게 열정적인 관심을 쏟았다.
제자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체면 불구하고 직접 쫓아다니며 부탁했다. “제자를 위해서라면 잘 쓴 추천서 한 장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지. 이곳저곳 참 많이 다녔어.”

제자 사랑은 그게 다가 아니다. 그는 본교 평생교육원 개원 때부터 현재까지 한 학기도 빠짐없이 강의했다. 그런데 6년 전에 줄곧 강의해오던 ‘발달심리’를 그만뒀다. 그 강의를 제자에게 넘겨주기 위해서였다. “그 녀석이 졸업하고 일 할 곳이 없는 것이 안타까워 내 자리를 내줬지.” 현재는 ‘발달심리’대신 ‘미술치료’ 수업을 하고 있다.

김재은 교수는 명예퇴임 후에도 명함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퇴임 후에는 ‘블루닷 창의성 연구소’를 창설해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블루닷 창의성 연구소’는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기관이다. 이미 이곳에서 창의력 육성에 도움을 주는 ‘뿌꾸와’라는 개발해 보급했다. 그는 “지식은 현실에 적용했을 때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창의력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중이다. 몇 달 후면 개발한 프로그램 중 성인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창의력을 향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인터넷 블로그에 공개할 예정이다.

“무난한 삶은 부끄러운 삶이야. 성공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도전해야 얻을 수 있지.” 아이 교육과 관련된 서적부터 수필집까지 펴낸 책만도 120여권. 요즘에 힘을 쏟고 있는 ‘창의력 괴짜에게 날개를’이라는 제목의 원고는 완성 단계에 있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만 마흔이 넘어 배운 기타, 키보드를 직접 연주하며 연구소 직원들과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 종이접기협회 부회장이었던 만큼 틈틈이 색종이도 접는다. 전시했던 펜화도 수준급이다. “난 결코 다재다능한 것이 아니라 의지와 끈기가 충만할 뿐이야.”

스물아홉부터 예순여섯까지 38년을 몸담았던 이화는 삶 자체였다. 아들, 아들, 아들 줄줄이 3남을 둔 김 교수가 가르친 이화인들은 제자 이상이었다. 딸 같은 이화의 수많은 제자들에게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화 학생들은 도전정신이 부족한 편이야. 맡은 일은 다들 잘하는데 스스로 뚫고 개척하는 끈기가 부족해.” 이어 이화 학생들을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받은 것을 돌려줄 줄 아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해. 나눔은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도움의 손길, 용기, 관심을 공유하는 거야.”

제자들은 김 교수 하나만으로 ‘혜택’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화 예찬론자 김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던 이화와 황혼기를 함께하고 있다.      

김아영 기자 momona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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