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교수(한국학 전공)
나는 이대에 꽤 오래 있었지만 학부 전공과목을 강의할 기회가 거의 없어 학생들을 만날 일이 없다. 연계 전공과목이라고 해서 하는 과목이 있는데 종교나 한국 문화에 관계된 것들이라 학생들이 오지 않아 폐강되기 일쑤다. 그래, 이런 지면에서라도 학생들과 소통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척’하는 건데 오늘은 ‘꼰대’ 같은 소리를 해야겠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이 대학 시절이라는 인생의 부분이 거의 유일하게 교양을 제대로 쌓을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앞으로 학생들이 여생을 살면서 대학에서처럼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전공 공부도 좋지만 제발, 부디 교양을 쌓는 공부를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부탁하고 싶다. 교양을 쌓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진부하게 들리는 격언은 아무리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학생들은 독서에 관한 한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여러가지 이유로 책을 지나치게 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오면 적어도 기본적인 책은 다 읽어야 하는데 한국의 대학생들은 이게 거의 돼있지 않아  걱정이다.
대학 졸업자라면 어떤 독서 과정을 거쳐야 할까?
내가 말하는 독서 방법이 정설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의 기준점은 될 수 있을 게다. 나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책을 읽었으니 그 과정을 말해보려고 한다.

모름지기 독서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중학교 때에 한국의 중단편 문학작품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를 회상해보면, 내가 굳이 읽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학교의 풍조가 그러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 무협소설도--아주 간혹 음서(淫書)도--읽었지만 대부분이 한국 문학작품들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서는 세계 문학 작품들을 읽기 시작했다. 『인간의 굴레』나 『제인 에어』 등 그 당시에 읽었던 책들은 항상 내 뇌리 어딘가에 남아 있다.

지금은 고교생들이 쓸데없는 공부에 바빠서 못하지만 우리 때에는 남녀 고교생들이 모여 독서 클럽을 많이 만들었다. 나도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그런 클럽에 가입했고 덤으로 책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건대 그때 그 클럽에 나간 이유가 책보다는 여학생들 만나기 위한 것이었음을 감출 생각은 없다.
대학에 오니 자연스럽게 종교서나 철학서를 읽게 되었다. 이 지구에서 인류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훌륭한 지혜를 모르면 안 된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고 세속적인 데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건 큰 낭패이자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돈이나 벌고 골프나 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물론 돈도 벌고 골프 치는 것도 좋지만 그런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런데 인류의 최고 지혜를 만나려면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대학 때 혼자서 불경이나 『논어』, 『노자』, 『삼국사기』와 같은 동양의 고전을 공부했다. 또 플라톤의 『대화』나 스피노자의 『에티카』등과 같은 서양의 고전도 보기 시작했다. 절이나 교회에 쫓아다니면서 종교 공부를 하기도 했다.
아울러 내 관심사였던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현대물리학, 명상 서적 등도 틈틈이 보았다. 이밖에도 많은 책을 보았지만 그걸 다 일일이 적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대체로 이런 순서로 책을 읽으면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대학 때에는 약속도 아예 책방에서 잡았고 책방 앞을 지나면 절대로 지나치지 말고 반드시 들어가 책을 보기로 내 자신과 약속을 하기도 했다. 부디 학생들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과정의 소개가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이 작은 글을 마치자.

최준식 교수(한국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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