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영문·04)

내게는 ‘버리는 취미’가 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단위로 버릴 것을 선별한답시고 냉장고며 책장을 뒤져대니 가히 취미라 불릴 만 하다. 신기하게도 언제나 새로운 버릴 것이 나타난다. 거추장스러운 것이 내 주위에는 늘 넘쳐난다.

생각 외로 우리는 비움에 인색하다. 언젠가 쓸모가 생길 것 같아 모아둔 것들이 집집마다 그득하다. 실상은 버려 마땅한 고물을 쌓아두고 그것들이 마치 곳간을 채우고 있는 쌀 가마니 인 양 안도한다. 손때 묻은 고3 시절 참고서든 다 늘어난 고무줄 바지든 저마다 깃든 사연에 마음이 짠해 쉽게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버리지 않으면 새롭게 얻는 것도 없다. 있다 해도 ‘새 것’의 가치를 오롯이 발휘하기 힘들다. 저장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채 새로 더하려 만하다 보면 그 방대함과 막연함에 지치기 마련이다. 결국은 헌 것도 새 것도 그저 하나의 무질서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책장이며 옷장뿐 아니다. 머리 속도 마찬가지다. 하루 동안 우리가 습득하는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수많은 상황과 각종 텍스트, 미디어로부터 알게 모르게 끊임없이 학습된다. 그 과정에서 방대한 지식과 갖가지 생각들이 뇌에 가득 들어찬다. 정보는 그 특성 상 버리기가 더 힘들다. 실제로 사람들은 학습한 내용을, 그 중요도의 경중에 관계 없이, 비우고 싶지 않아한다. 어쩐지 아깝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 무작위로 얻어진 정보들 가운데 무엇을 가려 저장할 지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철저히 분류하고 삭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복잡하게 뒤섞인 철 지난 지식에 질식하게 될 것이다. 무조건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지혜로워지지도 않을뿐더러, ‘언젠가’를 대비해 무작정 쌓아두기에는 우리의 뇌는 한계가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그의 저서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에서 뇌의 효율적인 기억 재생을 위해서는 불필요한 정보를 지워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삭제하고 깜깜히 잊어버릴 줄 알아야 집중력도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들만 재빨리 머릿속에 집어 넣고 나머지는 버림으로써 항상 새로운 정보를 위한 공간을 남겨야 한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러한 ‘비움과 채움의 순환’에 능하다. 그들은 특별히 지식을 남들보다 빨리 판단해 과감히 버릴 줄 안다. 습득한 정보의 중요 뼈대만 남기는 방식으로 뇌를 정리하고 그 빈 공간은 다시 새로운 지식으로 채운다. 공부를 잘하는 비결은 결국 우겨 넣기 보다 우겨 넣은 것을 잊는 데 있다.

버리는 행위는 또한 가장 최상의 것을 향한 집중의 과정이기도 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는 단순히 하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을 통해 뱉어 진 다양한 생각들이 거르고 걸러져 결국 하나의 가장 요긴한 아이디어가 되는 것이다. 궁극의 아이디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브레인스토밍을 통한 수없이 많은 생각의 발산과 그것들의 희생이 요구된다. 결국 버리는 행위는 최상의 것을 선별해내는 가장 생산적이고도 효율적인 방식인 것이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철저히 버리는 것은 90년 대 유행했던 미니멀리즘 예술 사조와도 그 의미가 상통한다. 미니멀리즘은 배제와 간결함의 추구야말로 본질에 다다르는 방법이라는 일념 하에 회화의 궁극적인 종착점, 즉 근원의 발견을 목표로 회화를 최소한의 요소로 제한한 바 있다.

기존의 것들을 경중에 따라 정리해 필요치 않은 것을 과감히 비울 때 새로움은 열린다. 궁극의 무엇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버리고 또 버려야 한다. 하다못해 사진도 그렇지 않은가.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인 요즘, 좋은 사진이란 곧 별볼일 없는 사진들을 과감히 삭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역시 양보단 질이다. 봄을 맞아 해진 참고서와 묵은 옷을 탁탁 털어 정리하듯 우리의 뇌도 쓱쓱 과감하게 한 번 비워보자. 기대치 못한 새로움이 밀려 올 것이다.

김민아(영문·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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