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감독(1910년~1998년)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원작 <덤불 속>을 영화화해 1951년 <라쇼몽>을 선보였다. 흑백영화 <라쇼몽>은 한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세 사람의 증언이 엇갈리면서 전개되는 추리물이다.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정당하게 남자를 죽였다는 산적, 강간당한 자신을 바라보는 혐오스러운 시선에 남자를 죽였다는 여자, 자결했다고 말하는 남자의 영혼. 살인 사건에 연루된 등장인물들은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살인 장소에서 단검을 훔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진실을 전부 알고 있던 나무꾼은 아예 입을 다문다.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라쇼몽>은 “이기심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인간의 내면을 꿰뚫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다. 종부세 논란과 같은 정치적인 이슈에서부터 탤런트 안재환씨의 죽음, 이화 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시각에 의해 재생산된다. 사건을 둘러싼 사람․ 단체 간 이익이 상충되면 이야기는 더 과장되고 왜곡된다.

그렇기 때문에 취재를 할 때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일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자칫하면 기사가 아닌 소설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도 때로는 충분히 사실 확인을 거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을 왜곡 전달해 진실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다. 기사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대학보가 학교에 배포되는 일주일 내내 엄청난 자책감에 빠져 있곤 한다.

사실을 잘못 전달해 진실을 훼손하는 일은 전적으로 기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때때로 사건의 사실 관계를 두고 어긋난 이야기를 하는 취재원들에게는 인간적인 안타까움이 남는다. 거짓된 사실을 정말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교내 기물 확충․ 수리 등 고발성 기사를 취재할 때 특히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이 종류의 기사에서 ‘요청했지만 학교가 받아주지 않았다’․ ‘학교는 요청을 받지 못했다’는 진실공방은 단골이다. 서로 충분한 대화가 없기에 취재원 간 오해는 더 깊어진다. 기사는 미궁에 빠진다. 이러한 경우 고발성 기사는 잘못된 것을 시정하고 교내 환경을 더 좋게 만들어주려는 목적과는 달리, 학생과 학교 간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고발성 기사 뿐 아니라, 행사 소식을 담는 기사 취재원들도 가끔 ‘좀 더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한다. 이때 기자가 제대로 취재를 하지 않았다면, 기사는 본래 목적을 잃어버리고 포장된 과장 광고가 된다.

영화 <라쇼몽>은 승려의 입을 통해 ‘이야기의 왜곡과 거짓은 인간의 나약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있다. 거짓은 이기심이다. 거짓은 먼저 나약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타인에게 “나는 그를 처음부터 죽이려던 건 아니었다”고 말하게 한다. 영화 속 씨줄과 날줄로 얽혀 전개되는 두 이야기는 사소한 거짓말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거짓은 나비효과를 일으킨 듯, 한 사람을 살인자 또는 의지 넘치는 사무라이로 둔갑시킨다.

탈무드에는 “혀는 마음의 펜”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대학보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취재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말이 기사로 쓰이니, 필자는 취재원 각각이 ‘작은 기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록으로 남는 학보는 백 년 혹은 천 년도 넘게 ‘이화’의 이름을 달고 전해 내려갈 것이다. 필자도 열심히 쓰겠다. 모두들 진실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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