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며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며
  • 김혜숙 교수
  • 승인 200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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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교수(철학 전공)
사회 전체가 여배우 자살 사건으로 들썩이다 많은 의문들을 뒤로 둔 채 세간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장자연과 동일하게 여성의 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통해 암암리에 좌절감을 경험한다. 부지부식 간에 여성 내면에 쌓이게 되는 이런 좌절감들은 여성의 무기력증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연예계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치부하고 말기에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잔인하다.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하루 350명이나 되는 멀쩡한 남자들이 성매매를 하고 있는 현실은 단지 강 건너 동네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권력화한 문화가 우리 모두에게 강제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 관계의 표상은 소박한 데이트와 사랑, 혹은 결혼조차도 주고받음의 유사 상업적 교환관계로 치환시켜 버리고 있다. 설사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다. 영화, 광고, 드라마와 같은 시각적 매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시간과 공간적인 모든 것들이 이 아슬아슬한 게임을 돕고 있다. 한 개인이 유능하고 잘나면 얼마든지 이 게임을 비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라”라고 하는 생각은 많은 유능한 여성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있는 한 동일한 인간인 나는 자유롭지 않다고 설파한 철학자를 따라, 우리는 이 세상에 여성의 몸에 대한 성적 착취가 존재하는 한 동일한 여성으로서 우리 자신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장자연에게 일어난 일은 언제 어디서든 같은 몸을 가진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 안에서 공녀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슬픈 환향녀들의 이야기와 일제시대 성적 착취를 당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해방 후 양공주들의 이야기와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고 있는 탈북여성들의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여성의 몸을 둘러싼 이야기는 정말로 외면하고 싶지만 이 세상에 차고도 넘친다.

내가 아직 젊은 교수였던 시절 정신대 문제를 처음 우리 사회 안에 환기시킨 윤정옥선생님께서 특강을 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 내 옆에 앉아서 듣고 계시던 원로 교수님께서 혼자말처럼 “저런 말씀을 왜 학교에서 하시나”고 못마땅해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 신성한 공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실제 세계가 아닌가? 이 신성한 공간에 젊은 시절 잠시 머물렀던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내야 하는 현실은 듣기도 싫은 그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화여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여자대학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남녀공학 대학에서 여학생 비율이 50 %를 육박하거나 때로 그것을 넘는 일이 생기고 있음에도 여자대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경제 규모로 12-3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여성 상위공직자나 기업내 관리자 비율은 부끄러울 정도로 낮다. 직업과 양육의 이중부담 이외에도 여성을 단순히 사물화 하는 만연된 문화와 가치 또한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장벽을 개인이 마주해 극복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겨우 조건이 좋은 소수의 여성들만이 그런 일에 성공할 수 있을 뿐이며 그런 여성들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여자대학은 이런 현실에서 여성 삶의 조건을 철저하게 직시해야 한다. 여성이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조건을 위해 집단의 힘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고 대안적 대학의 이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 제사 날에도 억지 웃음을 웃으며 자신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애를 썼던 장자연의 사연은 우리 모두의 슬픈 사연이 될 수 있다. 빛나는 젊음과 이상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중도에 꺾이지 않고 잘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 학교가 큰 울타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우리 각자 생각해볼 수 있다면 장자연도 조금 덜 외롭지 않겠는가?

김혜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