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슬(국문·06)
3월14일 토요일자로 방송된 KBS 1TV <다큐 3일>의 주제는 ‘靑春, 몰입의 시간-한국예술종합학교 새 학기’였다. 청춘, 이라는 말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이화와 여느 대학들과는 조금 다른 예술학교의 이질적인 풍경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문화부에서 인가한 국립예술학교로, 연극,영화,음악,미술 등 예술에 꿈을 가진 예비 예술인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삶과는 조금 동떨어진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공통의 요소는,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길로 즐겁게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에서는 새학기를 맞이한 예술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의 분주한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냈는데,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학교에 다닐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인터뷰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행복이 서려 있었다는 것이다. 짧지만 임팩트 있는 멘트였다.

과연, 학교에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고, 공부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겁다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두툼한 전공서들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토익문제집이며 각종 외국어 서적들까지 독파하고, 해외경험과 봉사활동은 이력서 기본 옵션이라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들은 푸릇푸릇한 봄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규격화된 표본속으로 자아를 밀어넣고 있는 중이다. 사회는 보여지는 결과에만 환대한다. 혹자는 요새 젊은이들은 호기롭지 못하다고 질책하기도 하지만, 마음놓고 자신의 개성과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사회는 지극히 경직되고 정형화돼있다.

한예종의 학생들은 비교적 연령대가 다양하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정명화 교수에게 레슨을 받는 학생은 아직 스무살이 되려면 한참이나 먼 어린 소녀이고,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학교를 찾은 늦깍이 학생도 있었다. 예술에 대한 꿈과 열정으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오던 그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내가 화면을 통해 보았던 많은 예술학교 학생들은, 한결같이 예술에 한없이 몰입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기쁨을 알아간다고 말했다.

내가 4년째 보아온 많은 이화인들 역시 공부든, 동아리든, 무언가에 열심히 몰입하며 살고 있었고, 자아 발견에 한없이 몰두하던 멋진 이들도 많았다. 다만, 대학에 입학한 후로 ‘진심으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들어보기는 한건지 도통 감감하기만 하다. 즐기면서 몰두할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를 찾기 보다는, 그저 떠밀려오는 과제와 시험에 버거워하고, 오르지 않는 영어점수에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캠퍼스가 4월 중순 무렵으로 접어들면, 이제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대학에서 처음으로 시험이라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부탁하건데, 눈으로 보여지는 맹목적인 결과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이 원하는 대로 나를 맞추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나는 이름 없는 부속품에 불과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단지 남이 하니까, 안하면 안될 것 같아서, 눈치보이기도 잔소리 듣기도 싫으니까 토익 문제집을 고통스럽게 붙들고 있다면, 당장 내려놓고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부터 모색해보길 바란다. 

독일의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튼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1만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만큼 젊다는 것, 청춘을 지난다는 것은 성숙해지기 위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진심으로 행복해하며 몰두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래서 많은 이들이 청춘을 아름답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속에, 아직은 망설이고 있는 미완의 꿈이 꿈틀대고 있다면, 같은 이화인으로서 용기를 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싶다. 언젠가는 무수히 겪었던 지난 과정들을 되돌아보며, 꿈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 어느 지점에서 진심으로 후회없이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날이 올 것이다. 

최예슬(국문·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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