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포진교육박물관장 이인숙씨 인터뷰

이인숙 덕포진 교육박물관장.
기우뚱한 나무 책상이 옹기종기 모인 낡은 교실. 누구나 ‘땡땡땡’ 쳐볼 수 있는 학교종부터 배불뚝이 조개탄 난로, 찌그러진 양은도시락, ‘수, 우, 미, 양, 가’로 매겨진 통지표까지…. 경기도 김포시 덕포진(사적 제292호)에 자리 잡은 ‘덕포진 교육박물관’은 시대별 교육 사료 전시장과 체험학습장을 갖춘 문화공간이다. 3월29일(일) 이곳에서 사랑과 추억을 가르치는 덕포진 교육박물관장 이인숙(초교·70년 졸)씨를 만나봤다.

40년 전 모습 그대로인 교실 한가운데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씨의 음악수업이 시작된다. 정겨운 풍금 선율이 흘러나오자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관람객들이 옛날 동요를 듣고선 어려웠던 시절을 자꾸 떠올리시는 것 같아요. 한번은 어떤 아주머니가 도시락을 보시더니 눈물을 흘리세요. 왜 그러세요? 그랬더니 자기는 학창시절에 도시락을 못 싸가지고 다녀서 도시락만 보면 그렇게 부럽대요. 그때 생각이 나서….”

남편 김동선(69)씨는 이인숙씨가 수업을 하는 동안에도 책상 줄을 맞추고 관람객을 맞느라 정신이 없다. 본래 같은 초등학교 교사였던 두 사람. 이씨는 교과서부터 다 쓴 몽당연필까지 차곡차곡 모아두는 남편의 습관 덕에 지금과 같은 교육박물관이 세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물관이 세워진 결정적인 계기는 1990년, 이씨의 교통사고였다.
“버스에 부딪혔어요. 돌바닥에 머리를 찧었는데, 그 후로 점점 앞이 보이질 않더라고요.”
시신경을 다친 탓이었다. 이씨는 결국 1992년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김씨는 “아내가 학교를 그만둔 이후 몇 번이나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으려고도 했다”며 “나도 교사였지만 교직에 대한 아내의 애정은 못 따라갈 정도”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만나게 해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며 절망에 빠져있던 아내를 달랬던 김씨는 1992년부터 특별한 작업을 시작했다.
“남편은 서울의 아파트를 팔고, 퇴직금까지 몽땅 쏟아 부어 건물을 지었어요. 마침 집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아놓은 교육 자료를 본 손님이 ‘박물관이 어떠냐’고 조언을 해주셨죠.”

교육박물관은 1996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덕포진 입구에 그렇게 문을 열었다. 이곳은 언제든지 제자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365일 연중무휴 운영되고 있다. 1층 전시실 이름은 3학년 2반이다.
“3학년 2반은 제가 마지막으로 담임했던 반이에요. 여기서 관람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해요. 50년도 더 된 풍금을 치면서 동요를 부르는 음악수업이 끝나면 제 남편이 옛날 교과서로 1950, 1960년대 옛이야기를 들려주지요.”

부부는 낮에는 박물관서 손님을 맞이하고, 오후6시 이후에는 마당 한편에 마련해둔 황토방에서 살림을 한다. 김씨가 아내 대신 주방장 노릇을 한 지 16년이다.
“남편은 저의 빛과 그늘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죠. 한번은 남편이 건물의 온 불을 다 꺼놓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어요. 앞 못 보는 제 아픔을 이해하고 싶다고….”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이씨. 남편의 사랑을 발판 삼아 고난을 이겨낸 이씨에게도 꿈이 있다.
“매니저를 두고, 전국에 강연하러 다니고 싶어요.(웃음) 특히 대학생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에게 옛것의 소중함과 고난의 가치를 일깨워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은 없을 것 같네요.”
 
글·사진: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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