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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창업 성공실화, 양상추·홍차·여행이 만들어낸 기적
투명한 경영 정신과 패기로 일하는 3명의 이화인, 이화의 0.6%인 ‘사장님’들을 만나다
2009년 03월 23일 (월)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2008년 본교 대학정보공시 자료 ‘취업자의 유형별 비율’에 따르면 취업자 중 정규직이 67.4%로 가장 많고 시간제 일용직이 16.8%, 임시직이 14.9%였다. 특히 자영업은 0.6%라는 희박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대학보는 특유의 열정과 패기로 창업을 실현시킨 김가영(사회·05)씨, 김보연(교공·05년 졸)씨, 김유나(시디·06년 졸)씨를 만나봤다.

△폭리 취하지 않는 농산물 유통회사 세워…김가영씨

 

 

 

(주)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 대표이사 김가영(사회·05)씨.

 
 
 

 

 

지리산에 위치한 농가 비닐하우스에서 상추가 재배되고 있다.

 
 

“1년 365일 상추 한 상자가 1만4천500원입니다.”
지리산 해발고도 500m에 위치한 작은 마을. 이 마을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은 상추 농사다. 약 10개 농가가 하루 평균 상추 6백 상자를 수도권 50개 업소로 판매하고 있다. 이 활발한 유통의 중심에는 (주)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 대표이사 김가영(사회·05)씨가 있다.

“친구들과 농촌봉사활동에 참여하다가, 우연히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는 모습을 봤어요. 열심히 일군 채소가 제 값을 받지 못해 농사를 포기하는 거였죠. 가슴이 아팠습니다.”
고등학생이던 2003년, 이미 IT회사 ‘이누스’를 창업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김씨. 때마침 사람의 의식주과 동떨어진 IT사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소비자와 농민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 고향인 남원에서 맛본 상추에 반한 거죠. 농민들은 대부분 마당이나 텃밭에 자급용 상추를 심는데, 그 유기농 상추가 품질이 최고거든요.”

상추는 가격의 변동 폭이 큰 농작물이다. 수확량이 많을 때는 한 상자에 1만 원대에 팔리지만, 날씨가 안 좋고 흉작일 때는 6만원까지 값이 오른다. 특히 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의 차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김씨는 소비자들에게 정직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할 방법을 궁리했다.
“유통회사가 폭리를 취하지 않으면 농민도 살고 소비자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치로 잡은 것이 농산물의 ‘가격 표준화’와 ‘품질 공산화’입니다.”

김씨의 전략은 성공했다. 지리산 부근 농가에서 매일 아침 양질의 싱싱한 상추를 공급받기로 전속 계약을 맺었다. 2005년 (주)지리산친환경농산물유통회사를 만들었다. 상추의 맛은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1년 내내 균일했다. 덕분에 1년 365일 상추 한 상자에 1만4천500원이라는 가격 균일화를 내세울 수 있었다. 최상급 상추를 사계절 동일한 가격으로 납품받는 음식점들도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김씨의 회사는 점점 성장해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6백 상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죠. 음식점 사장님은 아침마다 농산물시장에 갈 수고를 덜고, 농민들은 연간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좋은 거죠. 회사 스스로도 재고가 없으니 수익력은 극대화되고요.”
김씨는 투명한 경영정신으로 국내에 전무했던 ‘폭리 없는 농산물 유통업체’를 세웠다. 그는 ‘20대’라는 젊음의 패기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말한다.

“유통회사가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죠. 농민 분들과의 계약도 그냥 된 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웬 여자애가 상추를 팔아준다고 하니 그냥 무시하셨지요. 그 마을 이장님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어요. 팔지 못해 쌓여있는 감자 2만 박스를 대신 팔아드릴테니, 저를 믿어달라고요.”
꼬박 두 달이었다. 청량리, 청과물 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무작정 감자를 팔았다. 얼마나 걸었는지, 무릎에 물이 찰 정도였다. 결국 이장님과의 약속을 지킨 김씨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 다음 일은 고객 확보다. 전단지를 만들어서 분식집부터 대형 삼겹살집까지 모두 뿌렸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유기농 상추가 1만4천500원이란 것을 아무도 믿지 않았고, 싼 데는 반드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김씨는 과감하게 무료로 상추를 배달했다. 그 후는 시간문제였다. 처음에는 받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도, 싱싱한 상추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그제야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는 아직도 세대 간의 결속을 고민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 모두가 경쟁하지 않고도 서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나아가 배려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요.”
자신의 삶은 ‘옳은 것’이 아니라 단지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일 뿐이라는 김가영 CEO. 경쟁하기보다는 더불어 살기를 택한 창의적 삶의 기원은 어디일까. 밭을 갈아엎는 한 삽의 풍경에 가슴 아파할 줄 아는, 배려의 마음이 아닐까.

△유럽 50개 레스토랑과 독점계약 체결…김보연씨

 

 

 

2008년 6월 레스토랑 탐방 여행 중인 김보연(교공·05년 졸)씨가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 마을에서 잠시 쉬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유명 레스토랑 라뜰리에 베르제(L'atelier berger).

 

“식사는 그 나라 문화의 엑기스예요.”
파리, 피렌체, 로마,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런던. 유럽 맛집 예약사이트 ‘레스토랑 패스(restaurantpass.co.kr)’에서는 5천원이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주요도시의 50개 맛집을 즉시 예약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예약자에게 제공되는 특별한 혜택 또한 별미다. 레스토랑 패스는 세계 최초로 유럽 6개 도시의 대표 레스토랑과 온라인예약 독점계약을 체결했다. 11일(수) 오후5시 레스토랑 패스 대표 김보연(교공·05년 졸)씨를 만났다.

“원래 여행을 참 좋아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는 6개월 간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밤을 새느라 안구건조증에 걸리기도 했어요. 취업 후에도 휴가 때는 꼭 여행을 갔고요.”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김씨에게 여행이란 단순한 유흥이 아닌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다. 틈만 나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여행자금이 모자라면 부모님께 ‘어학연수 대체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

“배낭여행이었지만 식사는 좋은 곳에서 하려고 노력했어요. 하루 중 두 끼를 굶고 남은 돈으로 한 끼를 거하게 먹었죠.”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여행사가 소개해준 음식점에서 식사를 때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씨는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점을 찾아 돌아다녔다. 식사가 곧 그 나라 문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주에 삼겹살 먹는 분위기를 말하는 거죠. 각국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점에는 저마다 그만한 이유가 다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곳에서 밥을 먹다보면, 꼭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것 같기도 했어요.”

밥 한 끼를 위해 발품을 파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중에는 미슐랭 가이드(Michelin le guide rouge)나 자갓 서베이(Zagat Survey)와 같은 세계 미식 평가지를 참고하는 요령도 생겼다. 하지만 유명한 레스토랑일수록 불편한 점은 더 많았다.

“손님이 있으면 오후10시까지도 영업하는 한국 식당과 달리 외국 식당은 영업시간이 엄격해요. 그래서 예약이 필수인데, 시차 때문에 통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받는다고 해도 예약 절차가 너무 번거롭고….”
한 번은 예약해둔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적도 있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텅 빈 식당 안을 들여다볼 때의 허무함을 잊을 수 없다는 김씨. 그밖에도 어디를 가고, 무엇을 주문해야 하는지 일일이 잡지를 들여다보기도 번거로웠다. 나라마다 다른 식탁예절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일을 대행해주는 회사가 없어서 서운했고, 그래서 스스로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씨는 결국 2008년 4월 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향했다.

“직접 만든 수백 개의 홍보 브로슈어와 노트북을 가지고 맨땅에 헤딩하기로 떠난 거죠. 기대 반 걱정 반이었어요. 과연 1백년 역사의 레스토랑 주인들이 나를 만나줄까, 많이 떨렸어요.”
처음에는 이메일 서신과 전화만으로 홍보에 나섰다. 그러나 백전백패. 단 한 군데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인 한 명 없는 유럽에서 김씨는 막막할 뿐이었다.

첫 계약은 파리의 북유럽스타일 프렌치레스토랑 ‘라뜰리에 베르제(L’atelier berger)’에서 성사됐다. 김씨는 미리 만날 약속을 잡아놓고 가게로 향했다.
“주인아주머니의 눈빛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제가 한창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와 눈을 마주치시고는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으시더군요. 가부장제 사상이 존재하는 한국에서는 마이너스 요소였던 ‘사업하는 젊은 여자’라는 점도 외국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사업의 전망과 기획자의 열정을 높이 사는 외국에서 ‘동양인 여성 사업가’의 일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그가 4개국 6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방문한 레스토랑만도 300개가 넘는다. 그 중 50개 레스토랑과 계약이 성사됐다. 그리고 유럽으로 떠난 지 약 반 년, 2008년 11월에 문을 연 레스토랑 패스. 아직 갈 길이 멀다. 각국의 레스토랑, 나아가 문화의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발품 팔아 만든 아기자기한 카페…김유나씨

 

 

 

홍차전문점 오리페코(ORIPEKOE) 사장 김유나(시디·06년 졸)씨.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홍차전문점 오리페코(ORIPEKOE)의 내부 정경.

 

노란 오리가 붉은 리본을 목에 매고 찻잔 속에 담겨 있다. 거대한 오리 조형물이 장식된 현관문 안쪽으로 홍차향기가 아찔하다. 11일(수) 오후2시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 358­103번지. 김유나(시디·06년 졸)씨의 홍차전문점 오리페코(ORIPEKOE)를 찾았다.

2008년 9월 문을 연 이곳은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주말에는 좌석이 모자랄 정도다. 개업 반 년 만에 포털사이트 자동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유명해진 ‘오리페코’. 오리페코의 ‘오리’는 주인장인 김씨의 오랜 별명이다.

“카페의 인테리어 콘셉트를 오리로 잡았어요. 현관 위의 대형구조물부터 카페 곳곳의 소품, 빨대 하나까지도 전부 오리에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좋아하니까….”
분홍 상의에 알록달록한 체크멜빵치마를 입은 27세 김씨는 영락없는 소녀다. 양은주전자에 우유를 끓이는 그의 모습이 아기자기한 가게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기자에게 차를 건네는 김씨의 표정이 불현듯 심각해진다.

“누군가는 제게 ‘로망(Romance)’을 이뤘다고 말하겠죠. 하지만 가게를 열면서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결국 모든 것은 낭만이 아닌 노동이고, 현실이라는 사실을요.”
본교 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김씨는 대학원에 다니면서부터 카페 창업을 준비했다. 틈틈이 일러스트, 홈페이지 제작 프리랜서로 일하며 용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홍차교육원에 등록하고 홍차제작기본과정을 수료했다.

“졸업 후 창업자 과정까지 마치고 티 소믈리에(tea sommelier) 자격증을 땄어요. 커피는 따르는 것만 1년을 배우고 제과제빵은 인터넷에 떠도는 조리법으로 혼자 익혔죠. 그래도 공부는 끝이 아니었어요.”
이론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는 발품 팔아 하는 공부가 진짜 공부라고 생각했다. 홍대, 압구정, 삼청동 등지의 카페를 탐방하며 속이 쓰릴 정도로 차를 마셨다. 본받을 만한 인테리어나 소품은 사진으로 찍어 남겨뒀다. 이렇게 해서 모인 사진만 몇 천 장이다. 그러나 더 그에게는 더 큰 공부가 남아있었다.

“어렵게 창업자금을 마련했는데, 가게를 보러 다니는 데만 1년이 걸린 거예요. 마음에 든다 하면 권리금이 비싸고, 성사될 뻔한 계약도 물거품이 되기 일쑤고…. 사기도 당할 뻔 했어요. 부동산 업자가 이중계약을 시도한 거예요. 인간관계 자체에 회의를 느꼈죠.”

사회에서 개인은 각자의 이익관계 속에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김씨. 어렵사리, 본래 가정집이었던 지금의 가게자리를 얻었다. 팍팍한 현실이 서러웠다. 게다가 인테리어 비용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두 달을 꼬박 울면서 지냈다. 그리곤 다시 일어섰다.

“결심했어요. 초저예산으로 가정집을 개조해보자고…. 인테리어 공부부터 시작했어요. 바닥에 깔 나무 자재부터 벽돌, 페인트의 수십 가지 종류를 다 외우고 다녔어요.”
을지로 목공소에서 직접 인테리어 목수를 데려오고, 경기도 과천 일대를 뒤져 ‘가장 질 좋고 저렴한 페인트’를 구입하는 등 발품팔기에 매진했다. 자동차 연료비만 한 달에 70만 원을 썼다. 그래도 일반 상가에서 자재를 구입할 때보다 예산을 훨씬 절약할 수 있었다. 오리 인형, 조명, 컵 등 가게를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소품들은 대부분이 일본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설명하는 김씨가 잠시 감격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해서, 열게 되었네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차 마시는 손님들을 보면 뿌듯해요.”
김씨는 창업을 꿈꾸는 이화인들에게 서울시 창업스쿨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인터넷반 또는 외식반 3개월 과정을 수료하면 정부에서 3∼4천만 원의 창업자금을 저금리로 빌릴 수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의 여유를 선물할 수 있기까지, ‘로망’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아셨으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공부, 또 공부하셔야 해요.”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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