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업 교수의 어원인문학 교실

여성들의 화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루즈다. 이 단어는 불어인 만큼 불어 식으로 정확하게 발음하자면 ‘후주’라고 해야 한다.

후주는 여성들에게 화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 모양이다. 어느 여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표현만 해도 그렇다. ‘마지막 선물’을 잊는데 왜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가? 또 다른 여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오늘밤만은 그댈 위해서 분홍의 립스틱을 바르겠어요”라는 표현도 그렇다. ‘마지막 선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선물을 잊는 데 립스틱을 바르는 것이나, ‘오늘밤만은 그댈 위해서 분홍의 립스팁’을 바르는 것을 보면 립스틱 또는 후주는 분명 바르는 사람의 심리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시 후주로 돌아가서, 이 단어의 어원은 뭘까? 후주(rouge)는 12세기에 라틴어 루베우스(불그스름한)에서 나온 말이다. 얘들이 잘 걸리는 병으로 홍역이라고 있는데 이 홍역(rougeole, 후졸르) 역시 후주와 그 어원이 같다. 후주의 정확한 불어 표현은 후주 아 레브르(rouge a levres)나 바똥 드 후주(baton de rouge)다. 이 단어가 화장과 관련되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부터다. 이 단어는 처음에는 볼연지만을 가리켰으나, 요즈음에는 오히려 입술연지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한편, 후주(rouge)가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1848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시아누크가 1960년대 캄보디아 공산주의자에게 붙인 명칭)가 있는데, 이 말은 ‘크메르 공산당’을 지칭하는 말이다. 흔히 공산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붉은’이라는 이 후주(rouge)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한업 교수(불어불문학 전공) hujang@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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