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진(법학·04)씨는 2008년 11월 ‘쌩동차’로 제5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당시 24세였다. ‘쌩동차’란 사법시험 1차와 2차를 1년 안에 합격하는 것을 일컫는 은어로, 사법고시생 사이에서 ‘쌩동차’ 합격생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졸업도 안 한 어린 나이에 ‘쌩동차’라는 두 기쁨을 동시에 거머쥔 허수진씨를 1월2일(금) 그가 고시생 시절 자주 갔던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쌩동차’ 합격
허씨는 2006년 7월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2007년 2월 첫 번째 1차 시험에서 그는 쓴맛을 봤다. 다행히 방황은 없었다. “아깝지도 않고, 절망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점수로 탈락해 곧바로 다시 공부에 몰입하기 쉬웠어요.” 집중력을 발휘해 작년 2월 두 번째 1차 시험에서 바로 합격한 허씨는 그해 2차 시험까지 당당히 합격했다.

허씨의 합격 소식을 들은 주위 친구들은 “합격할 만하다”는 반응이다. “머리가 좋아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보다 내 노력을 인정해주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그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 ‘노력파’였다.

허씨는 ‘새벽형’ 인간이었다. 매일 새벽 6시, 그는 학교 앞 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한 후 아침 7시가 되면 졸린 눈을 비비며 솟을관에 있는 개인 책상에 앉았다. 헌법, 민법, 형법. 국제법 서적이 양옆으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책들 사이로 얼굴을 빠끔히 내밀고 헌법 강의 테이프를 재생시켰다.  “귀가 찢어지도록 반복해서 들었어요. 학원 강의보다 테이프를 더 애용했죠.”

오후 12시 반부터 정확히 40분을 정해 놓고 점심 식사를 했다. 그러나 책상에 다시 돌아와 앉으면 놀고 싶은 생각이 들고,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곧바로 종이를 꺼내 ‘딴 생각한 시간 ○분’, ‘졸았던 시간 ○분’이라고 적었다. “허비한 시간을 적어놓고 보면 자극이 돼 집중이 잘 됐어요.”

그는 화장실도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했다. 3차 시험 때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시험을 보기 위한 예비 훈련이었다. 집중력이 슬슬 떨어지는 저녁에는 성경책을 꺼내 읽었다. “성경 구절을 읽다보면 신앙인으로서 죄책감이 들어 다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죠.” 밤 11시가 돼서야 공부는 끝이 났다.  “쳇바퀴 같은 생활이었지만 다음날 해야 할 공부가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어요.”

그러나 허씨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1차 합격 후 2차 시험 공부를 시작할 때였다. 2차 시험에서는 1차 시험 과목인 헌법, 민법, 형법, 국제법에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행정법의 4과목을 더해 모두 8과목을 공부해야 했다. 당시 2차 시험 과목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며칠 동안 책상 앞에 앉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나 자신에게 속으로 물어봤어요. ‘공부하기 싫어?’, ‘응’. ‘그럼 특별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니?’, ‘없어’. ‘무엇을 해야 마음이 편하니?’, ‘공부’.” 어쩔 수 없이 그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공부였다.

2차 시험 준비 기간만큼은 그도 공부를 즐기지 못했다. 하루에 해야 할 진도만 간신히 채워가며 버텼을 뿐이었다. 이런 그를 붙잡아준 것은 같이 공부한 친구였다. “다독여 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쌩동차는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판사’ 꿈 키워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꿈은 변함없는 ‘판사’다. 그 꿈을 꾸게 된 이유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의 담임선생님은 야심찬 의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의법원’을 열었다. 학급 친구들은 고발하고 싶은 사건과 그 사건을 담당할 ‘변호사’의 이름을 적어 냈다. 허씨는 여자 중 유일하게 변호사 역할을 담당했고, 1학기 때 그가 맡은 사건은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2학기 때 맡은 한 사건이 어린 그를 울렸다. 한 친구가 그를 괴롭히던 ‘주먹대장’을 고발한 사건이었다. “‘주먹대장’이 그 친구를 괴롭히는 모습을 모두가 봤기 때문에 당연히 승소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배심원 역할을 맡은 친구들은 모두 ‘주먹대장’의 편을 들었다. “힘이 센 권력자의 편을 드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화가 났죠.” 그는 재투표를 요청했으나 1표 차로 또 패소했다. “법보다 권력이 우세하는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안타까움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그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판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판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인생에 있어 위기를 맞은 이들이에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판사가 되고 싶어요.”

올해 6학기를 이수하고 있는 그는 조기 졸업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계획이다. 합격 소식에 허씨의 아버지가 “이제 시작이다”라고 격려했듯이, 그는 ‘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남보다 좀 더 빨리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이제 길은 열렸으니 당차게 걸어갈 일만 남았다.

송현지 기자 yoyyos@ewhain.net
사진: 고민성 기자 minsgo@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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