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을 못 내 2006년 명문 사립대를 중퇴했던 29살 청년. 그의 싸늘한 주검이 9일(월) 서강대교 인근 밤섬 모래사장에서 발견됐다.

그는 1998년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다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등록금을 마련치 못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다. 결국 2006년 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인 전남 담양으로 내려갔다가 취직하고자 지난해 상경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작년 10월 고시원에 숙소를 마련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생활했으나, 취직에 실패했고 고시원 월세 20만 원 마저 내지 못했다. 그의 종착점은 ‘죽음’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그의 사망 소식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그를 대신해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으로 살아남기가 죽을 만큼 힘들다.”

이대학보 9일(월)자 ‘경제도 어려운데…정부보증학자금대출 이율 높아’ 기사에는 정부보증학자금대출을 받은 이후 1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학생의 사례가 소개됐다. 그 학생은 매 학기 220여만 원을 대출받았다. 대출을 여섯 번이나 받다 보니 매달 내는 이자만도 10만 원이 넘었다. “임용시험을 통과해야 원금을 갚을 수 있는데,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매달 10만 원이 넘는 이자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미래의 희망보다는 현실의 고통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 나라에서 ‘대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등학교 3년 동안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해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진정한 자유는 등록금을  낼 수 있는 소수 학생만의 몫이다. 등록금을 부담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자유는 없다. 그들에겐 빚만 있을 뿐이고, 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고 우울하다.

필자는 올해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던 중 우리 학교와 다른 사립대에 동시 합격했지만 우리 학교를 포기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화여대는 등록금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포기했어요”라고 답했다. 이제는 등록금이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대학의 선호까지 달라지는 시대다.

현재 500여만 원에 달하는 한 학기 등록금은 학생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비싼 금액이다. 등록금 동결만으로는 그들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7일(토) 서울지역대학생연합은 500여 명의 학생과 함께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많은 대학에서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지만 이미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등록금은 동결만으로는 안 된다”며 ‘반값 등록금 정책 실행’을 촉구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메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에게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 및 사랑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 순으로 욕구의 위계가 있다고 보았다. 안전 욕구는 질서 있고, 안정적인 세계에 대한 요구를 뜻한다. 존중 욕구는 개인의 자신감, 성취, 자유를 통해 실현되는 자아 존중과 관련된 욕구다.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도 생기기 어렵다. 등록금 부담으로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는 대학생에게 좋은 직장을 얻고 자아를 실현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학생들의 마음이 또 한 번 짓눌리고 있다. 채용정보업체 ‘잡코리아’와 대학생지식포털 ‘캠퍼스몬’이 작년 1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위한 사교육비가 대학생 1인당 연간 평균 193만 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등록금을 갚으려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또 돈이 필요하다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대학생들이 물건값 흥정하듯 등록금을 깎아달라고 하는것이 아님을 정부와 각 대학은 알아야 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생존을 위한, 자아실현을 위한 몸부림이다. 이 몸부림이라도 포기하지 못하도록 정부와 대학은 대출금 이자 지원이나 등록금 동결에만 만족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송현지 대학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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