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잘 모르지만…
우리 서로 잘 모르지만…
  • 김혜숙 교수(철학 전공)
  • 승인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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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의 어느 교수님은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던 날을 기억한다고 했다. 밤이면 깜깜했던 동네에 어느 날 일시에 불이 환히 밝혀진 경험은 아마도 매우 강렬했으리라.

요사이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금방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하긴 국민소득 몇백불 시대를 지나오면서 전화가 집에 처음 설치된 날, 냉장고가 처음 들어온 날, 흑백 TV를 처음 보았던 날을 무슨 대단한 기념일처럼 기억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구차하게 느껴질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컬러 TV와 컴퓨터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던 이 세상의 물질적 풍요가 너무도 당연히 느껴지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우리 세대의 이야기는 마치 저 구석기 시대의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급진적으로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소통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그것도 매우 의미깊은 방식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우 낯설고 적대적인 환경에 놓이게 되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 내가 처음 교수가 되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대학이 지금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도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고 여전히 대학은 변화 혹은 변혁 중에 있다고 한다. 젊었을 때에는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해결을 하면 문제가 끝나리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문제는 끝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 속에 태어났고 문제 속에서 성장하며 문제 속에서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삶, 인간의 역사는 그 자체로 미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무리 낯설고, 아무리 적대적이고,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문제 상황을 피해갈 수가 없다. 문제 상황을 대면하기 위해 우리는 나 아닌 타자와 대면해야 하고 그 타자가 사람이건 세속의 일이건 간에 그것을 이해해야 하고 그것과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은 매우 고통스럽고 답답하다. 봄은 이상하게도 젊은 사람들에게 소외의 느낌을 갖게 하는 계절인 듯하다. 나는 지금은 봄을 매우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환한 햇살 아래에서 모두 행복한데 나만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역으로 나는 그렇게 쉽게 한낱 꽃 하나에, 바람 한 점에, 햇살 쪼가리에 행복해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젊음의 오기에서 그랬던 것일까? 이 봄에도 분명 이화 교정 어디에선가 단순한 행복을 거부하며 스스로 초래한 소외감에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이제 나는 섣불리 ‘나는 너를 이해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또 그런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을 신뢰하지도 않는다. 어찌 알 수 있으랴. 한 사람의 고유한 경험 안에서 형성된 그 어둡고 깊은 내면을. 다만 ‘나도 조금 풍경은 다르지만 힘든 길을 왔고 여전히 그렇게 가고 있노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대학은 항상 젊은이들로 넘쳐나서 활기와 신선함이 가득 차 있는 곳이다. 이 신선한 공간이 자신을 바깥 세상으로부터 유폐시키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조금 넘어서서 생각하고 낯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스스로를 확장하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추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어쩌면 그 둘 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산적한 문제들 속에 있다는 것이고 살기 위해서는 그것들과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사유와 상상력의 힘은 대학이 젊은이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무기이다. 나는 타자를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잘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우리가 많은 문제 앞에 서있다는 공동운명으로 해서 나를 확장해 나아가서 타자를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만남과 소통은 인간에게는 지상명령과도 같다. 어떻게 만나고 소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들이 바로 이 곳에서 실험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고 해도 숨쉬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김혜숙 교수(철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