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낭송의 역사는 17세기 프랑스 살롱Salon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 왕이었던 샤를 4세는 고대 그리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에 성행했던 살롱을 이어받아 여성,귀족,부르주아 계층이 모두 어우러져 언어와 학문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친교모임을 만들었다.

이를 시작으로, 살롱은 사회적으로 억눌려져 있던 여성들이 지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예술적 소양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불안했던 프랑스 정국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떨쳐내고자 했던 귀부인들은 앞다투어 살롱을 열고, 지식인들과 예술가를 후원하고 그들의 예술과 사상을 여성들과 대중들에게 개방하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다.

살롱의 변천사를 막론하고, 문학작품을 낭독하고 토론하는 것은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문학가들은 귀부인들 앞에서 시나 소설, 짧은 희곡 등을 들려주었으며, 그러한 낭독과 토론내용을 기록하여 출판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문예잡지의 시작이었다. 살롱은 작가들이 창작열을 꽃피우던 곳이었고, 그들의 작품이 존재하는 버팀목이기도 했다. 살롱에서의 문학은 ‘낭송되기 위한’ 예술이었고, 낭송과 함께 살롱은 지적, 정신적인 가치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에도 여성들에게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낭송은 생소한 개념이다. 특히 시 뿐만 아니라 소설을 낭독하고, 언어가 다른 외국작가의 작품을 알아듣지 못하는 원어로 듣는다는 것에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살롱문화를 주도했던 그 후손들은 여전히 낭독회를 즐겨 찾는다. 한 소설가는, 마치 영화나 연극을 관람하러 가듯 한국에서 온 소설가의 낭독회를 찾아오는 독일인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문학은 곧 출판되어지는 것이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관례이지만, 서유럽을 중심으로 문학은 출판과 더불어 낭송의 비중 역시 높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낭송의 가치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젊은 주부들이 많이 찾는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주기적으로 시낭송회를 열기도 하고, 단발성 이벤트지만 문화공간이나 지역사회에서 열리는 낭송 행사로 일반 대중들이 가까운 곳에서 시인이나 낭송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넓어 졌다. 특히 음악과 미술 등의 인접 예술과 어우러지는 양상도 보이고 있어, 문화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에게 잔잔한 호응을 얻고 있다.

물론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인데 굳이 낭송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언제부턴가 최악의 사회, 경제적 위기로 인해,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확산되었다. 더 이상 국민들의 의견이 고르게 관철되지 못하는 정치와,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악한 범죄들, 반토막나는 임금과 폭등하는 물가에, 2009년을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은 마음 붙일 곳 하나 없는 건조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알록달록한 스키니진을 입고 단체로 율동하는 소녀들은, 여전히 미디어 속에서만 무한 복제되는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고,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지 돌이켜보면 실체 없는 허상만이 가득한 세상이다.

참 진부한 풍문이지만, 사람과 사람사이 얼굴을 맞대고 호흡하며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간다. 지금 이 시대를 얼룩지게 하는 흉흉한 각종 사건 사고들을 돌이켜보면, 정신적 소통이 원활했었다면 부르지 않았을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진실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날 한 줄 시와 소설을 낭송하는 여유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인들이, 누군가의 나직한 음성과 영혼이 그리워 질 때 꽃피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문학의 경제적인 효용성이나, 온갖 스케쥴이 즐비한 바쁜 일상을 탓하지 말자. 하루아침에 제값을 잃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펀드와는 다르게, 나른한 일상 속에서 읊어지는 한 줄의 시는 영원히 삭감될 수 없는 당신의 자산이 될 것이다. 

최예슬(국문·06)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