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게 리포트(report)는 지식을 습득하고 자기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중요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이런 리포트를 쓰고 있을까? 워싱턴(Washington D.C.)의 아메리칸 대학(American University)에서 수학하며 내가 받은 가장 큰 지적 충격은 학문적 글쓰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첫째로, 학문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했다. 화려한 수식어와 만연체를 구사해가며 용도와 장르를 뒤섞은 글을 쓰는 못된 버릇을 버려야 했다. 논리를 이끌어내는 사고과정의 개조가 필요했다. 나의 글을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였다. 문법상의 오류나 부적절한 어휘 탓도 있었을 것이고, 한국어로 구상한 글을 영어로 번역했을 때 생겨나는 어색함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글이 핵심 메시지를 명쾌하게 전달하지 못해서였다. 수업조교는 “주장이 명쾌하고 근거가 타당하다면 초등학생 수준의 어휘를 구사해도 상관없다.”고 조언했다. 교수님께서는 “리포트는 수필이 아니다. 연구 주제, 질문, 가설, 주장, 조사방법, 결론의 순서대로 사고하고 각각 명확하게 구분해서 쓰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조사 방법(methodology)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했다. 조사방법을 통해 연구자의 가설과 주장을 증명하는 수학적인 방식은 자연과학에나 적용되는 것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강의 첫 시간에 나는 정치 현상을 사회과학의 학문 분과로 정립시키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 철학적 논쟁, 여기서 싹튼 학문 또는 학파의 전통에 대해 알아보게 됐다. 사회 현상은 그 자체의 역동성이나 특수성 때문에 절대적 법칙을 들이대기가 다소 어렵다. 하지만, 학문이 학문이기 위해서는 선입견이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객관성과 보편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 그것이 조사방법이다. ‘정치과학(political science)’은 정치현상을 도식화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을 통해 현상을 들여다본 결과물이었다. 정교하게 발달된 조사방법은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연구 대상을 구체화하며 메시지의 명확한 전달에 이바지한다. 나는 강의마다 리포트를 쓰기 이전에 타당한 조사방법을 찾고자 교수님과 치열한 논의를 주고받아야만 했다.

셋째, 참고문헌 인용(citation)의 위력을 알아야 했다. 리포트를 쓰면서 타 저자의 논문이나 책에 있는 구절을 인용 없이 가져오는 것은 명백한 표절(plagiarism)이다. 하지만 참고 문헌의 인용에는 그 이상의 의의가 있다. 논문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이전의 지적 자산들 즉, 참고문헌을 살펴보고 알맞은 정보를 추출하여 재구성하는 행위다. 따라서 인용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연구자가 추가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잘 정리된 인용을 활용하여 자료를 찾다보면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주제와 관련된 지적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 작성한 인용은 새롭게 재구성된 자료로 거듭난다. 아메리칸 대학의 교수님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만큼 참고문헌을 규칙에 따라 정확히 인용하라고 주문하신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크게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인용 방법이 있는데 이 중에서 ‘시카고 스타일(Turabian and Chicago Styles Citations)’의 인용을 설명해 놓은 책은 올해로 무려 15번째 개정판이 나왔고, 책 두께가 헌법학원론만 하다. 나는 수차례 도서관으로 달려가 사서에게 내가 인용을 제대로 했는지를 물어봤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학문적 글쓰기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강조하는 미국 대학의 교육 방식을 보면서 나를 포함한 한국의 대학생들이 여태껏 기본기를 익히는 데 불성실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소위 ‘썰을 푸는’데 익숙해 화려한 어구로 비논리적인 주장을 무마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학문적 글쓰기를 위한 규칙과 방법은 단순히 리포트가 리포트처럼 보이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자신의 학습 및 연구의 발전과 진실성을 담보해준다.

구수경 (정외·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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