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고시원 방화까지 마이크로 다 전해드립니다
아프간 피랍, 고시원 방화까지 마이크로 다 전해드립니다
  • 최아란 기자
  • 승인 2008.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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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황혜경 기자(방송영상·05년졸)의 취재 현장

“서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 현장 중계차 연결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황혜경 기자!”

중계차가 돌아가자 검게 그을린 건물·현장 주위로 길게 둘러진 폴리스라인이 화면에 잡힌다. 그 중앙에 YTN 로고가 부착된 마이크를 들고 서있는 사람이 있다. 곧게 뜬 눈이 카메라 너머의 시청자와 마주친다. YTN 보도국 사회1부 황혜경(방송영상·05년졸) 기자다.

“도착했을 땐 상황은 다 끝나있어요. 용의자는 현장검거 됐고. 피해자신원조사를 해야 하는데, 현장에 남아있는 경찰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경찰이고. 다 아는 경찰은 이미 조사 끝내고 서로 돌아가 있거든.”
황기자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속속들이 발견되는 부상자와 유가족의 통곡소리.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취재는 해야 한다. 그는 마이크를 들고 사건 현장의 사람들에게로 달려간다.
“사실 흉흉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물어봐야죠. 피해자가 흉기에 찔리던 시각 정확히 무슨 소리가 났는지, 창문으로 뛰어내린 피해자는 보셨는지.”

논현동 고시원 방화사건 같은 대형사건의 경우, 중계차는 보통 6시간 이상을 현장에 머물러 있다. 매 시간 피해자의 신원·수사 진행상황 등 새롭게 취재한 내용을 중계하기 위해서다.
“이 사건은 오후 3시쯤 현장종료가 됐어요. 그 후엔 회사로 돌아가서 기사 작성하고, 편집하고, 리포트 완성해야죠. 정신없어요.”

완성한 뉴스가 방영된 뒤에도 황기자의 진정한 취재는 ‘완성’되지 않는다. 다음 날이면 다시 마포경찰서 기자실로 오전6시까지 출근하는 황씨. 그의 취재는 매일이 다시 시작이다.

△샘물교회 피랍사태·안양 초등생 유괴사건 기억에 남아

황씨는 2년 반의 기자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취재를 두 개로 꼽았다. 바로 2007년 아프가니스탄 샘물교회 소속 봉사단 피랍사태와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이다.
“당시 화제가 됐던 게 ‘봉사단이 버스로 이동 시 탈레반이 습격을 했는데, 그럼 운전기사는 탈레반과 한통속이었느냐 아니냐’였어요. 사건 초반에 연합뉴스 기자가 아프간 수도에서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한통속이 맞다’는 거였죠.”

연합뉴스 측의 보도에 미심쩍음을 느낀 그는 취재 기회가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드디어 피랍자들의 두바이 도착일이 왔다. 황씨는 여기서 평생 기억에 남을 인터뷰를 했다.
“피랍자들이 머물 호텔까지 쫓아가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쏜살같이 달려가서 질문했죠. 버스기사가 한통속이었느냐고. 그런데 아니라는 거예요. 난리가 났죠. 온 미디어가 오보 천지에, 연합은 사과기사 내고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하는 황씨의 활기찬 표정은 그러나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렵게 다시 입을 뗐다.
“12월25일이었죠. 예슬이, 혜진이가 납치된 게.”
황씨는 종아리까지 꽁꽁 얼 것 같은 상태에서 하루에 13번까지도 중계를 탔다. 오로지, 제발 어디선가 흔적이라도 나와라, 이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3월 중반, 수원·시흥 일대에서 아이들의 토막 난 사체 일부가 차례차례 발견됐다. 온 언론사 기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속보를 지켜봤다.
“숨죽이면서 봤죠. 살아있길 바랬는데, 속보가 나올 때마다······.”
먹먹한 표정의 황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다.

△회사원이기 이전에 기자에요

황씨는 지난 7월17일(목) 구본홍씨가 YTN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지금까지 계속 YTN노조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분이 사장이 된 뒤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첫째로 데스킹(기사편집)과정이 그런데, 기사 승인권을 사측이 마음대로 조종했죠. 거의 사상 검증 수준이에요.”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 써야한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쓸 수 없게 된 황씨는 일에 있어서도 동료들과 모여 투쟁을 시작했다. 1주일은 자기 이름으로 리포트를 진행하지 않은 적도 있다. 그러나 사측은 꿈쩍하지 않았다. 투쟁은 종료됐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황씨는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일을 못하니까, 박탈감이 너무 심하더라고요. 그 때 알았죠. 이게 내 삶의 중요부분이구나. 포기할 수 없겠구나. 그래도 저는 회사원이기 이전에 기자입니다. 계속 투쟁할 거예요.”

△만남에 대한 사랑·호기심 필요해···늘 치열하게 고민하라

황씨는 ‘기자를 꿈꾸는 이화인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에는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곧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재경 교수님 수업에서 경찰서에 가는 과제가 있었죠. 그 때 동부경찰서 기자실에서 현재 YTN 5기 선배를 만났는데, 글쎄, 그 아저씨가 그렇게 호통을 치는 거예요. 너 대체 왜 기자가 되려고 하냐. 절대 하지 마라! 하지만 그 땐 나도 포기를 안 했지. 하고 싶으면 해야지.”

황씨는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로 ‘만남에 대한 사랑’과 ‘호기심’을 꼽았다. 아무리 취재력이 좋아도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면 힘든 직업이 기자라는 것이다. 황씨는 “경찰서를 돌면 하루에도 100명은 거뜬히 만난다”며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했다. 황씨는 또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며 “질문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취재 시 필수로 필요한 습관”이라고 말했다. 

“7전 8기로 기자시험에 미끄러지던 사람들도 결국은 되더라고요. 흔들리지 마세요. 내 길은 이것뿐이라고 생각되는 뚜렷한 이유가 필요해요. 늘 치열하게 고민하세요. 기자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최아란 기자 sessky@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