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제가 역사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지만  잡지사 기자가 됐어요.”
6년차 잡지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유미(사생·05년 졸)씨는 대학 새내기 시절만 해도 ‘기자’가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는 “아마도 학보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면, 전공을 살려 ‘역사 선생님’으로 진로를 확정 지었을지 모른다”며 운을 뗐다.

그는 현재 ‘프리미엄 여성중앙’에서 패션, 뷰티를 담당하며 다양한 브랜드 기사와 인물 패션 화보 및 인터뷰를 맡고 있다.
“멀티 테스킹(multi­tasking)이 가능한 일은 정말 매력적이죠. 인물 섭외, 사진촬영, 인터뷰로 이어지는 다양한 과정이 무척 흥미로워요.”

다양한 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잡지 기자의 일이 이제는 그의 천직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에 단번에 오른 것은 아니다. 학보사 시절 부단히 노력하며 배운 ‘인내력’이 사회생활의 원동력이다.
“학보사에서 긴 시간 동안 기사를 고치고, 선배들의 혹독한 트레이닝 등을 거치 면서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어요. 그때 배운 ‘인내심’은 지금도 제 사회생활의 밑바탕이 되고 있죠.”

보도여론부의 차장으로 활동하던 시절, 오랜 기간 취재해야하는 기획기사를 주로 맡았다. 그는  대학생들이 국가고시에 치우치는 현상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관련 대학 학장에게 불려간 적도 있다. “그때 마다 내 기사가 이슈화가 되었다며 웃어 넘겼어요. ”

그런 대담함으로 2002년에는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았다. 국장의 자리에서 동기, 후배들을 이끌다보니 어떤 리더십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사회 나와서도 20∼30명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전 그 일을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배웠죠.”

편집국장시절 16대 대통령 선거 때 ‘큰 일’ 하나 치르기 위해 한 학기 동안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이대학보사의 제안으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학보사와 연합기사를 썼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권영길, 노무현, 이회창 후보를 만나 인터뷰 했다.
타 대 학보와 수없이 많은 회의를 거쳐 이루어낸 쾌재였다. “대선 후보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넘어야 할 벽이 높고, 준비해야할 것도 많았어요. 처음 준비를 시작했을 땐 인터뷰를 성사시킬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어요. 그런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대학 학보 연합의 끈질긴 요구로 인터뷰 할 수 있었죠. 어려운 일을 해내서 뿌듯했어요.”

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 기사에 대해 책임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글은 칼보다 강하니까요. 특히 인물기사를 쓸 때는 더욱 책임의식을 느끼게 되죠.” 기자는 현장에서 인터뷰이와 교감하는 것, 인터뷰이가 진정 하고자 하는 말 등을 담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인터뷰 하는 것은 연애하는 것과 같아요. 애걸하고 구애해야하죠.”

요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멀티 플레이어 같은 사람이라는 조씨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기계발을 하길 바란다”고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학보사 편집국장 시절 연애, 공부, 과외 등 아무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뭐든지 열심히 했었다는 조유미 기자.

밤샘 작업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도 새로운 인터뷰이에게로 향한다.

이한나 기자 hjnh87@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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