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양자 퇴임교수 인터뷰] 스포츠계에 여성파워 보여주다
[홍양자 퇴임교수 인터뷰] 스포츠계에 여성파워 보여주다
  • 이은지 기자
  • 승인 2009.02.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로의식’과‘최선의 노력’으로 국제 스포츠 지도자로 활약

제자들에게 헹가레를 받고 있는 홍양자 퇴임교수.

“돌아보면 엊그제 같을 정도로 중독이 돼서 학교를 다녔지. 최선을 다 했으니 나 자신은 아쉬움 없이 만족스러워.”
홍양자 퇴임교수가 특유의 호탕한 목소리로 밝힌 퇴임소감은 의외로 담담했다. 32년 6개월 간 재직한 우리 학교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일본 가와사키의료복지대학의 최초 외국인 교수로 초빙된 그를 18일(수) 특수체육실험실에서 만났다.

호는 ‘인광(仁廣)’. ‘인광’은 ‘가난한 선비가 남의 집 벽에 구멍을 내고 빛을 끌어다 공부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는 의미를 담아 친오빠가 지어줬다. 이 의미처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최초의 여성 동양인 국제배구연맹(FIVB) 부회장’, ‘초기 여성 스포츠 지도자’, ‘특수체육 분야의 선구자’ 등이 그것이다.

홍 교수는 ‘스포츠 분야가 거의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절’부터 여성 스포츠 임원으로 활동했다. “영어, 일본어 구사가 가능해서 인정받았어. 학회 사회자, 논문 발표 같은 여자들이 꺼리던 일도 나서서 열심히 했지.” 덕분에 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뿐만 아니라 세계배구연맹 부회장, 아시아여성체육연맹 등 국제적인 여성 스포츠 지도자로 활약했다.

어학공부의 중요성은 제자들에게도 늘 강조해왔다. 한국 축구사상 여성국제심판 1호인 임은주(체육교육 석사·97년 졸)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홍 교수의 조언으로 어학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제자들을 들볶는 편이라 미국과 일본으로 전공과 어학연수를 데리고 다녔어. 자극도 받고 경험도 쌓으라고.”
또 후배와 제자들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인생의 선배기도 했다. “내가 맡았던 학회, 협회에 후배들을 추천해서 대한 올림픽 아카데미, 대학스포츠연맹 같은 데 이대출신이 많이 진출했지.”  

교수와 학자로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77년 우리나라 최초로 특수체육과목을 개설했다. “다른 대학에는 없던 특수체육과목을 이대에서 처음 강의했지. 우리가 제시한 모델로 한양대, 서울대에서 수업한 것이 의미 있었어”라며 뿌듯해했다. 특수체육 전공을 살려 지역사회와 연계한 봉사활동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마포구, 서대문구 주변의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특수체육프로그램을 시작했어. 지금은 장애인 체육회에서 지정기관으로 인정받았지.” 주제통합형 교양과목 ‘인체미학’도 그의 손을 거쳤다. “주제통합형 강의다 보니 체육학, 예술, 과학 분야를 접목시키는 데 어려움이 많았어. 그래도 내가 개발하고 토착화시켜서 애착이 많아.”

학자, 스포츠 지도자로 국제무대를 종횡무진 하는 그의 출발은 역시 이화다. 우리 학교 체육학과에 배구 특기자로 입학해 ‘운동, 동아리 활동, 공부’ 3박자를 고루 갖춘 ‘엄친딸(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로 능력 있고 모범적인 인물의 대명사)’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체대 배구부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단대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연극부 활동을 하며 위문공연도 다녔다. 게다가 성적도 우수했다. “1학년 때 3.4점을 받은 것 빼고 줄곧 4.0점이었어. 그땐 운동하는 애들은 공부 못한다는 편견이 싫어서 열심히 했지.”

학창시절부터 이어온 성공비결은 예상외로 간단했다. “나는 ‘열심히’란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 목적을 먼저 세우기보다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자는 프로의식으로 열심히 하다보면 그 위치에 가있더라고.” 후배들에게도 ‘노력하지 않는 희망은 공상’이라는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스포츠계에서는 여성파워를 과시하지만 가족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시간이 모자라다 보니 가정에 신경을 많이 못썼어. 항상 미안한 마음이야”
4월이면 일본 대학의 강단에 서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할 계획이다. 더 넓은 무대에 선 그가 창조할 ‘유(有)’는 어떤 것이 있을 지 기대된다.   

이은지 기자 eunggi@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