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머리로 생각하는 여성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이했다. 여성신문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특산품이다.

갓난아이였던 여성신문을 성인으로 키우는데 가장 힘써온 사람은 김효선 사장(사회?84년 졸)이다. 여성신문 창간 때부터 기자로 활동한 김 사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효선 사장은 20주년을 맞은 여성신문은 한국 여성의 발전상과 희생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징표라고 표현했다. “여성신문 20돌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짧은 시기에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지금까지 여성신문이 생존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여성들의 헌신이 있었죠”

여성신문 20년은 위기의 역사 20년이었다. “언론이 생존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88년은 여성신문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충분하지 않았지요. 혹자는 여성신문이 1년도 못 가고 망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2003년 8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그가 소망했던 세 가지는 직원들 월급 밀리지 않기, 부도 내지 않기, 세금 밀리지 않기였다. 그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세 가지 소망을 이뤄냈다. 현재는 조금 이마나 당기순이익을 내고 있다. 김 사장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여성신문이 1988년 12월2일 창간 이후 지금까지 한 호도 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효선 사장은 이화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여성학의 핵심은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 문제로 바라보도록 전환하는 것입니다. 사회학과 여성학을 공부하며 복잡한 사회문제 중에서 사태를 한 번에 파악하는 시각을 가질 수 있었죠”

대학시절 제3세계 여성에 대한 심포지엄에 참가한 이후 처음 여성학에 관심을 둔 김효선 사장은 졸업을 앞두고 여성과 관련 있고, 새롭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세 가지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여성신문 기자였기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여성신문 입사 당시 기자는 단 4명. 주간지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었다. 인력난과 재정난 속에 그는 여성신문이라는 조직을 살리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했다. 편집국장이었지만 기사를 쓸 때도 있었고, 행사 콘티를 직접 작성하기도 했다. “힘들었지만, 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간다는 데서 보람을 느꼈죠. 일간지 기자였다면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거에요”

김 사장은 여성신문 20주년을 맞아 ‘여성’이라는 아이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여성신문 초기에는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다룰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사회를 건강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주제입니다” 이제는 여성신문이 이 시대에 여성을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해야 할 시기이다. 여성신문 20주년 기념 특집호의 주제는 ‘여성 미래를 묻다’이다. 그는 앞으로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핵심은 그대로 가져가되 다루는 방식과 방법론을 다르게 하는 노력에 힘쓸 생각이다. 

여성신문은 10주년까지는 생존에, 20주년까지는 브랜드화에 주력해왔다. 앞으로 30주년을 향해 달려갈 여성신문의 새로운 비전은 무엇일까. “그동안 여성신문이 여성운동에 가까운 형태였다면 앞으로는 언론으로 발전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에 내놓을 만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속가능한 여성언론으로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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